한국일보

정치 이야기

2018-07-31 (화) 노 려 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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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체스터 칼럼

“아,아, 정치 얘기는 하지 맙시다.”

친지들의 모임에서 대화가 무르익다보면 의례히 정치이야기 또는 종교이야기가 나온다. 한 사람이, 한창 뉴스에 떠오르고 있는 정치 화제를 꺼내면 사람들 마다 자기 의견을 내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사람들마다 자기 생각을 주장하고 남의 생각에 반론을 피며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그러다가 한사람이 ‘그만합시다’라며 나서는 것이다. 결국 ‘정치 이야기나 종교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불문율에 사람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답답한 마음을 덮는다.

하지만 정치 이야기 만큼 재미있고 흥미롭고 중요한 대화의 주제가 어디 있을까. 신문 첫 페이지, TV뉴스 첫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정치뉴스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명한 정치성향과 종교 성향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인생관이며 생활 철학이라고 할수도 있는 것이다. 서로 의견이 맞으면 정말 다행이겠지만, 그 성향을 감추고 겉도는 말만 하면서 과연 서로를 진정으로 알 수있을까.


한국에서 촛불이다 태극기다 할 때에, 친구가 얼핏 한마디 하는 걸 들으며 속으로 ‘나랑 정 반대네' 하고 입을 다물곤 했는데, 지금 미국의 정치상황이 그 때와 비슷하지 않나 한다. 아니 오히려 더 한 것은 아닌지. 한국의 경우는 나의 일상하고는 멀었기에 마치 영화를 보듯이, 강건너 불 구경하듯 할 수도 있었지만 현재 내가 몸 담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는 정치가 좀 더 심각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에 실린 ‘2016년 대통령 선거의 극도로 자세한 지도(An Extremely Detailed Map of the 2016 Presidential Election)'를 봤다. 미국 대륙 전체가 완전히 빨간 점으로 채워져 있었다. 서쪽 끄트머리와 동쪽 끄트머리 그리고 가운데 쯤 시카고 주변에 파란 색 점이 조금 있을 뿐. 트럼프의 나라라는 것이 한 눈에 보였다. 우선 우리 동네를 눌러 확대해보니, 어느 타운, 어느 선거 구역이 트럼프를 얼만큼, 힐러리를 얼만큼 찍었는지가 그야말로 자세하게 드러나 있었다. 놀라왔다.

트럼프라 하면, 부도덕한 거짓말쟁이, 백인남성우월주의자, 인종차별자이며 비환경보호자로 미국을 챙피하게 만든다고 싫어하는 사람들과 한편으로는 불법체류자를 추방하고 동성애자와 낙태를 반대하므로써 기독교 사상을 보호해 주고 세금을 줄여주며 잘난척하는 엘리트들을 눌러준다고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미국이 한 반쯤 나누어져 있는 줄 알았다. 아니 트럼프 지지율이 3,40퍼센트 밖에 안된다고 하니 아마도 트럼프를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은가 보다 했다. 그러나 그 지도를 보니 그게 아니었다. 미국 전체가 트럼프 정치성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새빨간 색의 미국 지도를 보면서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본질과 본성이 마치 안개가 거치듯이 서서히 들어나는 것 같아서 이민자로서 씁쓸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같은 이민자 처지에 있는 한국사람들과도 미국 정치에 대해서 조차 허심탄회하게 말을 할 수 없는 것 같아서 또한 씁쓸했다.

<노 려 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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