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명탄생의 신비

2018-07-28 (토)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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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로봇(robot). 자동으로 특정한 일을 하게 만든 기계다. 지금은 로봇 청소기에 이어 인간 로봇도 등장한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 로봇이 정교하게 만들어진다 해도 로봇이 아이를 낳을 순 없을 거다. 인공지능(AI)이 개발돼 인공지능로봇 소피아가 묻는 말에 대답도 한다. 그러나 기계일 뿐이다.

인간이 태어나는 것은 우연(偶然)이 아니라 기적(奇籍/miracle)이다.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 불가사의(不可思議)다.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착상되는 순간, 기적은 일어난다. 이 때로부터 280일. 약 9개월 반. 생명의 신비는 잉태된다. 생명공학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생명(生命)의 신비는 건드리지 못한다.

태아의 첫 8주간. 세포덩어리에 불과하다. 수정란 하나엔 한 사람분의 설계도가 들어있다. 착상이 되고 보름쯤 지나면 특수세포로 변한다. 인간의 몸을 구성할 세포들이 만들어진다. 8주 이후 중반기. 얼굴이 생겨나고 손가락마다 지문이 생긴다. 멜라닌 색소가 피부에 색소를 입힌다. 몸의 형태와 모든 장기가 생겨난다.


중반기 이후. 골격이 생긴다. 골격은 몸의 체형을 유지하고 틀을 잡아준다. 26주차. 폐호흡준비의 일환으로 혈액이 형성된다. 폐는 세상으로의 진출을 앞둔 마지막 순간에 성숙하는 장기다. 태아는 자궁에서 지내는 동안 액체로 가득한 상태에서 지낸다. 36주차. 바깥세상에서의 호흡에 대비해 폐에 무수한 허파꽈리가 생긴다.

38주차. 탄생. 한 아기, 한 생명이 태어나는 이 모든 과정을 기계인 로봇이 할 수 있을까. 없다. 생명탄생의 신비.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우주와 생명, 이 세상 모두는 신비에 차 있다. 9개월의 경이로운 여정 끝. 치밀하게 계획되고 준비된 한 인간의 삶이 기적 같은 태아의 탄생을 통해 시작된다.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랴.

생명을 비롯한 이 우주 안의 신비스러운 비밀들. 인간의 과학으로 하나하나 들추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존재해 있던 신비스러움 아니었던가. 보이지 아니하는 손에 의해 만들어진 우주의 모습. 그 우주 안, 특히 생명이 살고 있는 지구촌 속의 모습. 지구촌 안의 동물과 식물의 살아가는 생명체들 속에 숨겨진 신비스러움.

이런 신비 속에 하루에 태어나는 새 생명의 인간만도 수십만 명에 달한다. 그래,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슬프게 하여도 새로이 태어나는 생명들이 있기에 슬프지 않을 수 있다. 새 생명들이 살아갈 우리의 미래. 우리의 세대는 사라져 가도 새 생명체들이 일구어 갈 새 세상이 도래하기에 미래는 밝고 어둡지 않다. 소망이 보인다.

얼마 전 한 생명의 탄생을 보았다. 엄마의 배 속에서 9개월 반을 살다 세상 밖으로 나온 새 생명. 사흘 동안 자연분만을 시도하다 산모와 아기가 위험하다 하여 수술로 낳은 아기다. 7파운드 8온스. 건강하게 태어났다. 엄마와 아빠는 뉴저지에 살지만 아기는 뉴욕 맨하탄에서 탄생했다. 신비스러움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태어난 후 앙앙 울어대는 아기의 울음 속엔 “나도 이젠 인간이다” 혹은 “나도 이젠 사람이다”라는 인간선언이 서려 있는 듯하다. 어떻게 액체 속에서 엄마의 탯줄을 통해 먹고 자라난 아기가 저렇듯 세상 밖으로 나와 울어 댈 수 있을까. 귀엽다. 이렇듯 한 아기의 태어남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줄 것임은 미처 몰랐다.

아기의 탄생 후 생각되는 것이 제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인간 로봇은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결론이다. 그러니 현대과학이나 생명공학이 최첨단에 와있다 해도 인간의 과학엔 한계가 있음이다. 보이지 아니하는 손이 내민 한 생명의 잉태과정을 과학이 대체할 수 없음이 그 이유다. 아기가 가져다 준 그 기쁨. 신비(神秘)스럽다.

신의 비밀(神의 秘密). 인간의 생명 탄생만이 신비스러운 것은 아니다. 다른 생명의 탄생이 모두 신의 비밀 속에 있다. 그것뿐이랴. 새로이 태어나는 별들도 마찬가지. 들에 피는 꽃 한 송이의 생명에도 하늘의 신비가 함께 함이다. 생명과학이 숨 쉬는 곤충 한 마리의 생명을 만들어 내지를 못한다. 로봇은 결코 아이를 낳을 수 없다.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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