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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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죽음

2018-07-25 (수)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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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에는 자살자가 너무 많아 이를 방지하기 위해 누구든 자살하면 그의 옷을 다 벗긴 후 온 시내로 끌고 돌아다녔다고 한다. 시민들이 이런 끔찍하고 수치스러운 장면을 보았기 때문인지 그 후로는 자살률이 대폭 줄었다고 한다.

한국의 자살률은 지난 10여년 동안 세계 1위, 한주 44명꼴이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는 정치인, 그리고 기업인들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이들 중에 불법자금을 수수하고 문제가 터지면 수치심에 못 견뎌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례가 종종 있어왔기 때문이다.

청렴한 이미지를 고수해왔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도 가족의 뇌물 수수 사실이 밝혀지자 도덕적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겼었다. 노 대통령은 유서에서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 없다.”며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진보의 별’로 불리던 정의당 원내대표 노회찬 의원이 포털 댓글 여론조작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드루킹’ 김 모씨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특검수사를 받아오다 23일 투신자살해 정계는 물론, 온 국민이 충격에 휩싸였다. 고인은 남긴 유서에서 “금품은 4,000만원 받은 사실이 있으나 청탁과는 관계가 없고 가족에게는 미안하다.”고 하였다. 두 정치인이 모두 진실을 덮고 소중한 목숨을 헌신짝처럼 내버렸다.

이 비보에 애통해하는 조문행렬이 지금 줄을 잇고 있다. 이제 그가 죽고 없으니 앞으로 드루킹 수사도 제대로 이루어질지 의문이다.

‘장사꾼은 에비, 에미도 속인다’는 말이 있다. 이는 정치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라고 한다. 청렴결백을 자랑으로 여겨왔던 노회찬 의원도 돈을 받았다고 하니 아마도 그 말이 맞기는 맞는 가 보다. 실제로 정치인은 최대한 속여야 하고, 거짓말을 잘 해야 진짜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즉 양면성이 있어야 제대로 된 정치인이 될 수 있지, ‘내 목을 잘라도 그 일은 안 한다’고 하는 옹고집으로는 정치인이 될 수 없다고 한다.

노 의원은 유서대로 금품을 수수했다면 당당히 법에 따라 죄 값을 받았어야 될 일이다. 그런데 왜 의문만 잔뜩 남겨놓고 갔는지 모르겠다. 무슨 말 못할 깊은 사연이 있는 걸까, 그의 죽음의 이면이 더욱 궁금해진다. 그의 죽음이 과연 가족이 입을 치명상이나 자신의 도덕적 결함이 세상에 노출된 것에 대한 부끄러움만이 원인일까, 그 진실이 알고 싶다.
이제 그는 갔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항간에서는 그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설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대체 누가 왜...?

정치인의 이런 말로를 보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권력이고 명예고 다 부질없다는 점이다. 이렇게 죽을 바에야 돈이 다 무에 필요한가.

난세를 탁월한 문학으로 승화시킨 시인 도연명은 정치권을 벗어나 전원에서 생활했다. 그가 남긴 일화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세상이 나와 어긋났는데 수레를 타고 나가 무엇을 하겠는가?” 이 말은 도연명이 공직생활에서 물러나 있을 때, 그에게 다시 일해 달라고 수레를 보내자 그가 이 말을 하며 거절했다는 것이다.

후세에 그의 친구는 말하기를 “수양산(도연명이 살던 곳) 그늘이 강동 팔십리를 간다.”고 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그의 사상은 팔십리를 넘어 전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다. 한국 정치인에게서는 결코 보기 힘든 결과이다.

미국에서 거지에게 콜라를 주면 “땡큐” 하며 받는 이가 있고, “노 땡큐” 하며 안 받는 부류가 있다고 한다. 또한 햄버거를 주면 모두 하나씩 받아가지 더 달라는 거지도 없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거지들도 제 분수껏 살아가지 필요 이상의 욕심을 갖고 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 의원은 돈 4.000만원 때문에 그 귀중한 목숨, 그리고 가족, 행복을 버렸다. 그의 삶은 결국 살아있는, 가난한 거지의 삶만도 못한 게 아니겠는가. 참 안타까운 죽음이다.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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