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이, 헛먹지 말아야지

2018-07-21 (토)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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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다. 글쎄 나이를 어떻게 먹을까. 음식도 아닌데. 나이는 세월과 함께 한다. 세월이 가면 저절로 먹어지는 게 나이다. 그렇다면 가는 세월이 자신의 몸속에 들어오니 그래서 나이를 먹는다고 하는 걸까. 나무엔 태(胎)가 있다. 태를 보면 그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다. 결국 나무처럼 인간도 세월이 태가 되어 먹는 게 나이 아닐까.

나이를 생각하는 때가 있을 게다. 아마도 젊은 나이에는 나이에 별 신경을 쓰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신경 쓸 여유가 없을 거다. 시간가는 줄 모르게 삶을 투쟁해 살아가기에 너무나 바쁠 테니까. 60대 후반까지도 바쁜 사람들은 많다. 그래도 나이를 생각하는 나이 정도가 되려면 70에 들던지 아님, 70을 넘겨야 하지 않을까.

아니지. 젊은 나이에도 나이는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다. 반면 80, 90이 되어도 자신의 나이가 얼마인지 모르게 사는 어르신도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그런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인 듯하다. 그렇지만 보편적으론 은퇴 후, 즉 70세 이상이 되면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나이를 생각해 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앞으로 27년 후인 2045년. 평균 수명이 130세가 된다고 한다. 꿈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그 때엔 언제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나이가 되어야 할까. 아마도 100세. 하지만 금년을 기준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을 적용 대상으로 삼은거니 그 때가 되어 보아야 될 것 같다. 미국 메이오클리닉 연구팀의 발표다. 인간 몸속의 세포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세포분열이 멈추도록 프로그래밍이 돼 있다. 이를 헤이플릭 한계(Hayflick Limit)라 한다. 분열이 멈춘 세포는 몸속에 남아 일을 한다. 그러나 젊은 세포보다는 일을 잘 못해 인체 곳곳에서 고장을 일으킨다.

이 때 분열이 멈춘 늙은 세포를 제거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연구팀은 생후 360일 된 생쥐의 노화세포를 제거하고 건강상태를 측정했다. 결과는 일반 쥐가 626일을 산 반면 노화세포를 제거당한 쥐는 843일을 살았다. 수명이 30% 늘어났고 늙은 쥐에게서 운동력과 활동성이 증가하는 등 다시 젊음을 되찾았다는 보고다.

이 실험은 쥐를 대상으로 한 거지 인간은 아니다. 만약 이 실험이 인간을 대상으로 해 증명된다면 인간의 수명 130세는 현실이 된다. 이밖에 장수유전자복제와 생체이식, 젊은 피 수혈 등이 가능케 된다면 인간수명은 150세까지도 생존이 가능해 진다고 한다. 그러면 120세가 넘어야만 지난 인생을 되돌아 볼 나이가 되지 않을까.

나이를 생각한다는 건 곧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것과 같다. 자신을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살아온 과거와 현재, 미래를 그려보는 것과 상통한다. 지금까지 자신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 현재의 생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앞으로 남은 생이 20년이 될지, 30년이 될지, 어떻게 노년을 살아야 잘 살았다는 평을 들을지 등등.
문제는 양보다도 질이다.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왔느냐 보다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중요하다. 삶의 질, 즉 무얼 위해 살아 왔느냐가 더 중요하다. 밤낮으로 부모 속만 썩이며 살다 결혼한 사람이 있다. 결혼하고 나선 또 밤낮으로 아내 속 썩이며 살아간다. 부모 속, 아내 속을 썩이며 살아가는 사람이 남의 속은 썩이지 않겠는가.

이렇듯 타인의 속만 썩이며 살아간다면 1,000년의 수명을 산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인간이 나이를 먹는 건 나무가 나이 태를 먹듯 거저먹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되라고 먹는 것 아닐까. 장 자크 루소는 말한다. 청년기는 지혜를 연마하고 노년기는 지혜를 실천하는 시기라고. 나이 70이 되어 나이를 생각하는 사람. 늦진 않았다.

그런데 나이 70이 넘었어도 나이를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73). 나이를 헛먹은 것 같다. 아군과 적군도 구별 못하는 그의 행보. 5살 먹은 어린아이만도 못한 것 같다. 그런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미 국민이 더 한심하고 바보스러울 뿐이다. 세월에 감겨 도는 나무의 나이 태와 같은 나이. 헛먹지 말아야지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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