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들의 메달 뒤에는”

2018-07-17 (화) 나 리/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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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체스터 칼럼

지난달 미국의 유명인 케이트 스페이드와 안소니 보데인이 며칠사이로 각각 자살을 했다. 이로 인해 새삼스럽게 미국의 자살율이 늘고 있다는 우려의 말들이 나왔다.

그런데 한국은 12년째 OECD 자살률 1위를 지키고 있다. 2015년에는 하루에 44명꼴로 자살을 했다. 청소년 자살률도 10만 명당 7.8명으로 1위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이 숫자에 나도 속할 뻔했다.

몇 년 전 6월 25일, 그날 내 인생에도 평생을 잊지 못할 전쟁이 터졌다. 우리나라가 부산까지 3개월 만에 함락당한 것처럼, 미국 땅에서 친척 하나 없던 나와 가족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용기가 없어서 죽지 못했다. 고속도로에서 사고로 뒤집힌 자동차를 보면서 그 차가 내 차가 아닌 게 그렇게 억울했다. 그 상황에 내 아이는 또 오죽했을까.


한국을 잘 알지 못하던 나라들이 연합군을 보내 도와준 것 같이 얼굴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내 삶에 들어와 나와 내 가족을 구해줬다.

아이가 태권도 내셔널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아왔다.
태권도장 사범님은 아이의 힘듦을 운동으로 풀도록 도와줬다. 부모의 불화로 힘든 학교생활 대신 즐거운 태권도를 할 수 있도록 우정을 나눈 도장 친구들과 아이들이 운동으로 추억을 나눌 수 있게 지지해준 엄마들이 있었다. 대회에서 이기고 메달을 받기 위해서 운동을 한 게 아니었다. 아이에게 운동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 힘든 세월에 매일 운동을 해온 아들이 자랑스럽고 또 지금 이 순간이 가능하게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힘이 되어준 많은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고달플 때마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올바른 길이 되도록 삶에 멘토가 되어준 분들, 힘겨워 좋아하던 책도 글쓰기도 포기하려 했지만, 내 투정을 남들과 나누었던 한국일보 칼럼 쓰는 일까지도, 나를 돌아보며 새롭게 다짐을 하는 기회가 되어주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아직도 남한과 북한이 휴전이듯 내 삶 또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닌 잠정 휴지상태에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삶이지만 다시 전쟁이 나면 이번엔 절대 당하지 않기 위해서 감사함과 기쁨으로 오늘 하루를 산다. 그것이 나를 사랑해주는 분들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무심코 듣게 되는 살기 힘들다는, 죽고 싶다는 말 한마디를 그냥 넘기지 말자. 죽고 싶다는 내 한마디에 달려와서 날 붙잡고 그러면 안 된다고 따끔히 혼낸 친구가 있다. 혼자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다가가서 격려해준 학부모가 있었다.

세상은 남의 일에 너무 나서지 말라 하지만, 남이 돌이킬 수 없는 길에서 벗어나도록 해줄 수 있는 일들이 있는 것같다. 아들의 메달 뒤에 숨겨진 기적이 오늘 이 순간에도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의 고통 앞에서 고민하는 많은 분에게도 행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 리/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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