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찢어진 성경책

2018-07-16 (월)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크게 작게
나는 피난선을 타고 남하(南下)하고 있었다. 돛대로 바람을 타고 달리는 작은 어선이다. 피난민들 약 10명이 탔는데 그중에 경찰관이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책을 꺼내 한 장씩 찢어서 엽초를 말아 피운다. 자세히 보니 그가 담배로 말아 피우는 책은 성경이었다. 나는 언제나 바지 주머니에 포켓용 영한사전을 가지고 다녔었는데 그 경찰 아저씨에게 내밀었다.

“아저씨, 내 책은 아저씨의 책보다 종이 질이 나을 겁니다. 내 책과 바꿉시다.” 경찰 아저씨는 내 영한사전을 들추어 보더니 얼른 바꾸어 주었다. 내 손에 들어온 성경은 마태복음 17장까지는 이미 담배 연기로 날아간 찢어진 신약성경이었으나 한 달 동안 항해하며 세 번 신약성경을 통독하였다. 피난민의 외롭고 불안한 심정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성경에서 큰 감동을 받았으며 “평화로운 시대가 되면 더 자세히 성경을 공부해 볼 가치기 있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K대학교 법대 1학년생이었다. 판사가 되는 것이 나의 목표였으므로 신학교 같은 데는 전혀 생각한 일이 없었다. 나 자신의 많은 체험으로 볼 때 목사가 된다는 것은 사람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라고 확신한다.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나의 친척이 전라남도의 경찰관이었었기 때문에 그리로 찾아갔다. 주일이 되면 구례읍 교회에 출석하였는데 어느 날 담임자인 조동진 목사가 나를 불렀다.

“최 군, 냉천리 교회에 담임자가 없는데 다음 주일부터 자네가 가서 설교하게.” 정말 엉뚱한 명령이다. 신학교라고는 대문도 본 일이 없는 내가 어떻게 갑자기 설교를 한다는 것인가? 그런데 나 자신 놀란 것은 조 목사의 명령에 나는 성큼 “예, 해 보겠습니다.”하고 대답한 것이다. 나는 10리 길을 걸어서 지리산 골짜기에 있는 마산면 냉천리 교회를 찾아가 만 12개월 동안 설교를 하였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주일학교 교사를 하였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냉천리 교회에 가서 무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그 교회 전도사가 바로 며칠 전에 공비(共匪)에게 사살되었다는 것이다. 냉천리는 지리산 공비들에게 자주 습격당하는 지역이었던 것이다. 나를 이곳으로 보낸 조 목사는 그런 사실은 일체 말씀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전도사의 뒷자리라는 것을 모르고 온 것이다. 그러나 이미 시간은 늦었다. 내가 있는 동안 공비의 습격을 두 번 받았으나 요행히 살아남았다.

공무원으로 있던 나의 형이 분명히 어머니를 모시고 부산에 갔을 거라고 믿어 더 지체하지 말고 부산에 가야한다고 생각한 나는 교회에 사표를 내고 부산으로 떠났다. 그리고 형과 어머니를 1년 만에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내가 다니던 K대학교는 부산에서 개교하지 않고 대구에서 개교한 것이다. 늙으신 나의 어머니가 우시면서 나를 붙잡았다.

“이제는 너와 헤어질 수 없다. 네가 어디로 가든 그리로 따라가겠다.” 나의 형도 간절히 말하였다. “꼭 법관이 되어야 하느냐. 내가 잘 아는 분이 감리교신학교 교장님인데 이번 기회에 신학교로 옮겨 보면 어떻겠느냐? 너는 목사가 되어도 잘 할 거다.”

나는 얼른 대답을 못하고 닷새를 고민하다가 부산에 있으면 어머니를 내가 모실 수 있어 가족 모두의 소원을 풀 수 있다는 결론을 얻어, 신학교로 옮길 결심을 굳힌 것이다. 그 후는 일이 잘 풀리었다. 성진산업주식회사 이영호 사장이 나를 공장의 전도사로 채용하여 매일 학교에서 돌아온 후 10분씩 공장 직공들에게 전도 강연을 하였으며, 3년 뒤에 성진 교회를 창립하여 현재는 큰 교회로 발전하였다.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