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초등학교 때 구구단 외우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나도 구구단 외우기가 어려워 쩔쩔 맸었다. 6단, 7단, 8단이 다른 아이들처럼 줄줄 나오질 못했다. 담임선생님의 핀잔을 먹고 체육시간에 배가 아프다고 핑계대어 학교 뒤 숲에 숨어서 열심히 외웠다.
그 때마다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6/2는 2/6가 같고, 7/3은 3/7이고, 8/4는 4/8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6/6, 7/7, 8/8만 외우면 구구단 외우기가 다 끝나는 이치를 깨달았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교실로 들어가 구구단 외우기 시험에 통과했다.
중, 고등학교 때도 대수는 늘 신통치 않았으나 기하학은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숫자로 되어 있는 공식들은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가를 알아야 이해도 되고 암기가 쉬웠다. 숫자에 대한 나의 시련은 육군에 들어가 대대 통신대 서무계 일을 하며 또 한 번 치러야 했다.
연세대학에서 암호풀기 경연대회가 열렸다. 나는 대대 대표로 뽑혀 나가게 되었다. 며칠간은 집중적으로 연습만을 시켰다. 종일 숫자만을 보고 있으려니 어지럽고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잠자리에 들면 온통 숫자들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우리 대대가 우승하여 포상휴가를 갈 때는 힘들었던 언짢음은 사그라지고 들뜬 기분에 빠졌다.
미국에 와서 은행계통의 직장에서 고객 서비스 일을 맡아 하며 또 한 번 숫자와 씨름하게 되었다. 낯이 익은 고객들의 구좌번호를 외어두면 서비스를 하는데 신속하고 편리해서 좋았다. 손님들도 자기 번호를 기억해 주는 서비스에 대단한 호감으로 다가왔다.
숫자 외우는데도 나름대로 요령이 생겼다.
아무리 긴 숫자라도 두 자리나 세 자리로 끊어서 외우는 것이 편리하다. 전화번호나 소셜 번호가 그렇다. 같은 숫자가 반복되는 것이 쉽게 기억 된다. 가령 0204, 3979 같은 것이다. 일련번호로 나열되는 것도 쉽게 기억된다.(예 2347, 8760) 또 세자리가 0가 되는 것은 묶어서 외어졌다.(예 2355, 5690) 상대방이 전화번호를 불러줄 때 718-1234 하고 불러주면 지역번호는 적을 필요가 없다. 미리 516, 201, 212 등이 어느 지역번호인지 익혀두면 유리하다.
모든 숫자는 0에서 시작하여 10으로 끝난다. 8299 라는 번호판을 보면 8과 2는 10이 되고 99만 기억하면 된다. 6432 라는 수는 6과 4는 0이 되고 32만 기억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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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길/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