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때 그 사람

2018-07-11 (수) 김길홍/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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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촛불과 함께 남북회담과 북미회담이 열리고 나라 주변의 사정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급물살을 보면서 생각나는 분이 있다. 문익환 목사다. 그는 성직자요 학자요, 시인이고 애국자였다.

청소년 시절 그는 윤동주 시인과 같은 동문으로 문학 활동을 했다. 그리고 학자로 성경 구약의 시편을 번역했다. 본인은 신학교 시절, 나라의 분단을 매우 애통해 하며 눈물을 흘리셨다.

그런가 하면 군사독재 정부에 항거하여 감옥을 안방 드나들 듯 하였다. 만일 문익환 목사가 살아 계셔서 최근의 사태를 보았으면 가슴을 쓸어안으며 얼마나 기뻐하실까? 그가 군사독재 정부를 인정치 않아 여권 없이 북한에 가서 김일성주석을 만나 그의 어깨를 두들기고 통일을 하자고, 그러나 적화통일은 안 된다고. 말한 후 돌아 왔다. 그가 되돌아 왔을 때, 공화당(현 자유한국당)에서 얼마나 비방 했는가?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려 “악법도 법이다” 라고, 다시 말하면 군사 구테타 정부도 정부라고... 그러나 그는 군사 구테타 정부를 끝까지 정부로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세 가지를 잘 만나야 된다고 한다. 좋은 스승, 좋은 지도자, 좋은 부모 이다. 본인은 다행히 위 세 가지를 잘 만난 것 같다. 오랜 학교생활, 국민학교에서 시작해서 대학원 까지 훌륭한 스승들을 만났고, 조국 대한민국이 모처럼 다시 만날 수 없는 지도자 문재인 대통령을 보게 되었으며, 그런가 하면 건강한 부모덕으로 70세 중반인 나이에 지금까지 일생동안 병원에 단 한 번도 안 갔으니 부모덕을 톡톡히 본 운 좋은 사람이다.

오늘 따라 나라를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히던 스승 문익환 시인이 글 몇 자씩 쓰며 문인으로 활동하며 나라를 위해 기도 하는 나에게 그분 생각으로 초여름 우거진 나뭇가지처럼 푸르름이 뒤덮여 온다.

<김길홍/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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