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러시아 월드컵 F조 독일전을 하루 앞둔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기자회견 분위기는 불안한 기색으로 침울했다. 독일전에 임하는 자세를 기자들은 물었다. ‘마지막 절규’, ‘1% 희망“이라고 신태용 감독은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큰 희망을 걸었던 스웨덴에게 맥없이 패하고 멕시코와는 졸전을 거듭하다가 졌으니 선수들의 사기는 바닥까지 내려와 있었다. 이제 막다른 골목에서 세계 1위 팀 독일을 만났다.
경기 개시 직전, 불안과 초조함에 사로잡힌 선수에게 신 감독은 불러 세웠다. 신 감독은 몇 마디 화두를 던졌다. “멕시코가 독일을 이긴 것처럼 우리도 독일을 이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 “독일이 세계 1위라고 겁먹지 말라. 공은 둥글다. 최선을 다하면 우리에게도 기회는 올 것이다.”
그렇게 경기는 시작되었다.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전반전을 0:0으로 마쳤다. 의외의 선전(善戰)에 신 감독은 한껏 고무되었다. 이번에 신 감독은 두 손을 불끈 쥐며 말했다. “봐라, 독일 아이들 별거 아니다. 우리가 잘하고 있다. 후반전엔 더 잘하자.” 선수들은 달라졌다. 불안감에 사로잡혔던 선수들이 평안을 되찾았고 패배 의식에서 벗어났다.
승리를 꿈꾸는 새로운 자아상으로 바뀌었다. 불 튀기듯 치열한 경기는 2:0 승리로 끝났다. 한국축구는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불안이나 두려움을 그냥 내버려 두면 정신적, 영적 혼란에 빠져 큰 좌절을 낳는다. 불안과 두려움을 역이용하여 창의적 에너지로 전환시킬 수 있다면 세상을 놀라게 하는 도약이 일어날 수 있다. 이번 한국축구가 독일과의 경기에서 이 사실을 명백히 증명해 주었다.
독일이 낳은 위대한 인물 중 마르틴 루터만큼 존경받는 인물은 드물다. 루터는 종교개혁의 영웅이다. 루터로 말미암아 유럽을 위시하여 세계는 새 역사를 열었다.
실상 루터는 영웅의 풍모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루터는 본래 심성과 의지력이 연약한 사람이었다. 복종을 강요하는 아버지와의 치열한 갈등 때문에 루터의 청년기 정체성은 심하게 흔들렸고, 품위와 존엄성을 잃은 그의 내면은 오래 방황했다.
루터는 불안과 두려움에 눌렸고, 회의와 확신을 오가는 겁쟁이로 살았다. 루터는 “나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죄인이다.”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강박증 환자가 되고 말았다.
루터는 막강한 교권과 권력을 한 손에 쥔 교황이나 황제와 당당히 맞서 나갈 만한 인물은 결코 아니었다. 그가 어느 날 불연 듯 새로운 진리를 깨닫는 신학자가 되었고, 막강한 교황과 황제와 맞서는 종교개혁의 영웅이 되었다. 겁쟁이 루터를 담대하게 만든 그 힘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루터가 불안과 두려움의 굴레에서 벗어난 사건은 22살 때 일어났다. 친구와 함께 시골 길을 걷던 중 하늘에서 벼락에 내리쳤는데 옆에 있던 친구는 죽고 자신만 살아 난 신비 사건이 그 동기였다. 어떤 과학이나 이성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강열한 사랑 앞에 그가 지녔던 불안과 두려움은 추풍낙엽처럼 사라졌다. 그 순간부터 루터는 담대한 사람이 되었다.
현대인은 불안과 두려움을 병으로 알거나 죄악시 한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그렇게 설교하고 가르친다. 조금만 불안하면 좌절하고 안절부절 한다. 요즘 의사가 가장 많이 처방하는 약이 신경안정제다.
불안과 두려움을 두려워 말라. 우리의 영혼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있는 인간의 영혼은 내이(內耳)의 긴 회랑(回廊)과 같아서 작은 영혼의 떨림을 가지고도 믿음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당신은 리더인가. 루터처럼 독일을 이긴 한국축구 선수처럼 불안과 두려움 중에도 영혼의 깊은 회랑에서 빛나는 보석을 캐내는 영적 광부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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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