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만들기와 버리기

2018-06-30 (토) 한영국/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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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욕시에서는 특수고등학교의 입학시험을 폐지하기 위해 머리를 쓰고 있다. 목적은 의외로 간단하다. 아시아계 학생들의 입학을 막아보자는 것이다.

오래전, 아이 둘이 연달아 맨하탄의 고등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나는 8년 간 학부형 회의에 참석했었다. 그때 학부형회는 대략 세 파트로 나뉘어 일을 처리하게 되곤 했다. 백인계와 유태계와 아시아계의 3그룹이 사안에 따라 이합집산을 했다. 두 그룹이 뭉치면 무엇이든 통과시킬 수 있었다.(아프리카 계나 히스패닉 계는 너무 숫자가 적어 그룹을 만들지 못했다)

그때도 대략 아시아 계 학생들이 전교생의 반에 육박했는데, 학부형 회의에서 2분의 1의 힘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은 참석률이 저조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공립학교에 입학시험 제도를 만든 것은 백인들이다. 1960년 뉴올리언즈에서 있었던 일인데, 그때도 목적은 단 하나, 흑인의 입학을 막아보자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놀만 락웰(Norman Rockwell, 1894-1978)의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문제(The Problem We All Live With)’라는 작품으로도 유명한데, 이 그림은 흑인 민권운동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입학시험 사건의 중심에 있던 여섯 살 흑인 소녀 루비 브리지즈(Ruby Bridges, 1954-)다. 전국적으로 관심을 끌었던 루비 브리지드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연방정부가 인종 분리교육이 불법이라는 판결을 내렸음에도 남부에서는 흑백 통합교육을 여전히 실시하지 않고 있었다. 연방정부의 압력이 거세지자 이들 학교는 고육지책으로 입학시험을 시작해 흑인의 백인 학교입학을 사실상 막았다.

하지만 뉴올리언즈에서 이 시험에 합격한 여섯 명의 흑인 아동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루비고, 우려곡절 끝에 이 아이는 혼자 백인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학부형과 교사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법원은 마샬에게 루비의 에스코트를 명했고, 이 꼬마는 네 명의 마샬들 사이에 끼어 등교했다. 흑인 아이가 등교하자 학부형들은 자녀들을 데리고 귀가해 버리고, 교사들도 한 명 외에는 이 아이를 가르치기를 거부했다. 다음 날이 되자 백인 목사 하나가 자신의 딸을 성난 군중을 뚫고 등교시켰다. 자신은 흑백 문제는 모르겠고, 다만 자기 딸이 학교에 가야하기 때문이라면서...

그 후 학교가 정상화하는 데에는 긴 시간과 오랜 투쟁이 필요했다. 루비는 일 년 내내 마샬의 보호를 받으며 등교해 한 교사에 의해 혼자 앉아 공부했다. 루비를 독살하겠다는 협박도 있었다. 이 일로 인해 루비의 아버지는 직장을 잃었고, 조부는 소작농을 잃었다. 식료품 가게도 그들에게 물건을 팔지 않았다. 그럼에도 꼬마 루비를 비롯해 그들은 잘 버텼고, 거기에 락웰같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더해주어 지금 우리가 이만큼의 권리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루비 브리지즈는 현재 민권운동가로 활동 중이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인간의 기본권에 해당하는 ‘네 가지 자유’다. 1943년 루즈벨트 대통령의 의회연설을 기초로 한 ‘언론의 자유(Freedom of Speech)’, ‘종교의 자유(Freedom of Worship), ‘결핍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Want), 그리고 ‘공포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Fear)’가 그것이다. 입학시험을 만들 때에도, 또 그것을 버릴 때에도 그 목적이 ‘차별’이라면, 우리는 이 기본권에 ‘차별로부터의 자유’도 보태야 할 것이다.

<한영국/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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