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는 리비아계 영국 작가 히샴 마타르의 ' 귀환 ( The Return )'을 읽었다. 그는 영국의 저명 문학상 맨부커상을 받았고, ‘귀환’은 2017년 미국의 퓰리처상 논픽션 수상작이다. 그의 자전적 이야기인데 리비아의 폭군 카다피 시절 중, 아버지가 반체제 운동가로 납치당해 그 후 종무소식이다. 아직까지도 생사의 확인이 안된 상태로 작가는 아버지의 흔적을 좇아 그 행적을 추적해 나가고 있다.
“ 어떻게든지 살아남아라”고 한 아버지의 말을 깊이 새겨듣고 주로 영국에서 교육받으며 디아스포라의 삶을 산 그가 고국 리비아로 33년만에 귀환한다. 그동안 그리던 어머니를 비롯해 친족들을 만나고 아버지와 친지였던 지금은 백발이 성성한 분들과의 해후로 미처 몰랐던 아버지의 새로운 면모 (시를 쓴 건 알지만 학생 때 단편소설도 학생지에 발표했다는 )와 함께 눈물겨운 어머니의 말없는 희생도 알게 된다.
마지막 거취가 좀처럼 잡히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혈육의 끈질긴 정이 그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아버지의 죽음이 확실시 되면 장례식이라도 치루어 산자와 죽은자의 결별식이라도 분명히 할 수 있고, 조용히 망자를 기억 속으로 넣을 수도 있으련만, 아직도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생존가능성의 미련이 남아 미해결상태로 있는 것이다.
스토리 전체에 면면히 흐르는 “ 가족과의 끈끈한 정 ??? 피는 정말로 진한거구나”, 가족이 있기에 힘든 고비와 위험한 지경을 잘 넘기고 견디어 왔구나 하는 깊은 감동이 밀려든다.
6.25가 다가온다. 동족상잔의 잔혹한 역사는 어언 68년이 된다. 나는 마타르의 ‘귀환’을 읽다가 불현듯 내 어릴적 친구 정숙이 생각이 났다. 아버지가 경찰이셨는데
북한군의 제일호 검거대상자 명단에 올라 금방 잡혀가셨다. 아이들이 젖먹이부터 조롱조롱 5 남매를 둔 정숙어머님은 살림하고 아이 낳고 늙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 전통적인 주부라 바깥세상일은 도무지 모르셨다.
남편 없는 삶을 상상할 수도 없는 그녀는 거의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9.28 수복 후에는 매일같이 문을 열어 놓고 이제나 저제나 들어올 남편의 익숙한 발소리를 애타게 기다렸다. 그러다가 찾은 곳이 점쟁이 집. 용하다는 점쟁이는 다 찾아 나섰다. 남편이 살아 있는지, 생존했다면 언제 귀가할지 묻고 다녔다. 얄궂게도, 가련한 과부 아닌 과부의 알량한 돈주머니를 노린 점쟁이들은 한결같이 살아있다고 확언하며 귀가날자까지 찍어 주며 돈을 챙겼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그날엔 온 가족이 종일 문을 열어 놓고 기다렸다. 나도 정숙이의 희망 찬 소식을 듣고 돌아오신다는 날 친구 집에 가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생각이 난다. 그러나 밤이 맞도록 기다려도 기다려도 개미 한 마리도 들어오지 않자, 정숙이 어머니는 폭삭 쓰러지듯 주저앉으며 오열하듯 “이 놈들이 또 날 속였구나” 하며 울부짖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찌 정숙이 아버님뿐이랴! 수많은 사람들이 납치당하고, 북으로 끌려가고 처형당하고…남겨진 사람들은 전쟁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성장하고 늙어가고 일생 지워지지않는 상흔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전쟁이란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 사자는 말없이 사라져 갔지만, 또 남북으로 갈린 이산가족들의 애타는 사연은 지금도 진행형인 것을! 6.25때 산화한 미수습 미군 7,700구 중 이번 북미정상회담의 첫 성과물로 200구의 유해가 인도된다는 소식은 너무나 늦은 조치지만 그 가족들의 염원이 조금이나마 풀렸기를 빈다.
6.25의 참상은 우리 한국인 뿐 아니라 미군을 비롯해 참전한 유엔군 참전국들의 젊디 젊은 희생자 가족들에도 치유되지 않는 트라우마를 안겨 준 걸 생각할 때 우리 한반도엔 정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선 안된다는 생각을 갖게하며 6.25를 생각한다.
<
홍성애/ 뉴욕주 법정통역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