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6대 업적

2018-06-27 (수) 손영구/전 이승만 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미주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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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3일 금강산 연회장에서 이승만 건국대통령 기념사업회 주최로 이승만 포럼을 개최하였다

강사는 지난해 11대 한국 기념사업회 회장으로 취임한 신철식 회장이었다 신 회장은 박정희대통령 시절 국무총리를 지냈던 신현확 총리의 자제이다. 그는 강연에서 역사왜곡과 종북좌파들에 의해 잘못 전해진 사실들을 낱낱이 열거하며 이승만 건국대통령은 혼돈, 공허, 무지, 황폐가 창궐한 땅에서 오늘의 한국을 만든 인물임을 강조했다.

첫째, 망국과 비운의 시대에 구국의 선각자 역할을 한 인물, 암울한 시대에 태어나 아펜셀러 선교사가 세운 배재학당에서 서양문물을 접하면서 자유, 평등, 인권, 세계사 등에 눈을 뜨게 되었다. 나라가 일제의 식민지가 된 후 독립을 위해 헌신한다. 그는 선각자, 학문에 천재, 영어에 능통했다. 그리하여 1919년 상해에서 조직된 임시정부의 초대대통령으로 선출된다.


둘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국가를 한국에 창조한 건국대통령이다. 1945년 해방에서 1948년 8월15일 건국까지의 3년은 어둠과 혼돈의 시대였다. 고난을 극복하며 1948년 5/10 총선을 통해 민주주의 실천, 7/17 최초의 헌법제정, 7/20 대통령선출, 7/23 대통령 취임, 8/15 Republic of Korea 건국천명, 12/12 UN에서 국가승인 등 대업을 이루었다.

셋째, 농지개혁을 단행하여 농노해방을 이끈 개혁가, 1950년 농지개혁법을 공포 시행했다. 3년만에 농지의 95%를 자작농이 소유하게 되는 세계적인 농지혁신을 단행했다. 북한은 지금도 5-6개의 계급사회이다.

넷째, 교육혁명을 이루었다. 그 당시 문맹률이 78%였다. 문맹퇴치, 초등학교 의무교육, 교회에서 성경읽기, 중고 대학교 설립 미국에 유학 장려, 1961년 군사혁명시 미국을 유학하고 온 장교들이 1만1,000명 정도였다. 그 당시 사회의 리더는 군사교육을 받았던 자들이었다.

다섯째, 6/25 전쟁에서 신생 대한민국을 지켜낸 국군통수권자였다. 4/3제주폭동, 대구폭동, 여수순천 군 반란으로도 적화가 어려운 것을 안 김일성이 드디어 40만 군과 소련전차를 앞세우고 남침을 감행, 신생 한국을 없애려고 했으나 영어에 능통한 이승만대통령은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전시 작전권을 이양하며 공산화를 막았다.

여섯째, 한미동맹을 맺고 미국이 한국을 지키도록 장치한 선견지명의 행정가, 한미동맹을 맺으며 경제원조 8억달러 국군 60만 지원 및 군사고문단 설치 등 한국의 살길을 열었다. 70년 동안 미군의 주둔으로 경제가 활발히 움직였다. 한마디로 결론을 정의하면 이승만대통령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 이런 사실을 후손들에게 알려야 한다.

<손영구/전 이승만 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미주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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