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날벼락

2018-06-25 (월)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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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하늘에 치는 벼락을 날벼락이라고 한다. 엉뚱하게 부딪치는 재난도 날벼락이라고 표현한다. 한국 철원에서 생긴 일인데, A상병이 휴가를 마치고 자기 부대로 복귀하는 도중, 인근 사격장에서 날아온 유탄에 맞아 죽었다. 이거야 말로 날벼락이다. 죽기 전까지도 전혀 생각지도 않은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이다. 왜 A상병은 그 날 그 순간 그 자리를 걷고 있었고, 표적을 떠난 유탄과 마주칠 수가 있었을까?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는 미스테리다. 그 당시 살아계시던 LG그룹의 구본무 회장이 A상병의 유가족에게 1억 원을 기탁하였다고 한다.

벼락 맞을 확률은 1,000만 분의 1이라고 한다. 로또에 당선되는 확률도 똑같이 1,000만 분의 1이다. 그러니 벼락 맞을 일도 없고 로또에 당첨될 일도 없다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벼락이 많이 치는 곳이 콜로라도 주이다. 2007년에 이 주에서 54명이나 벼락을 맞고 죽었다. 그렇지만 벼락을 맞고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이 딱 한 사람 있었다고 한다.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제임스 쳐치 씨(54세)는 낚시를 하다가 벼락이 낚시 대를 쳤는데 본인은 손가락 하나만 잃고 무사하였다. 미국의 저명한 기상학자였던 부랜드 써스맨 박사는 벼락이 치는 날 창문을 닫으려는 순간 벼락을 맞아 18피드 날아갔는데 죽지는 않았다고 한다. 벼락의 위력은 정말 대단하다.


“재수 좋은 날이다.”, “재수가 나쁘다.”, “아이고 재수 없는 놈, 밥맛이야.” 등등 한국인이 자주 쓰는 말이다. 재수(財數)는 본래 재물에 대한 운수를 가리키는데, 일반적으로 좋은 일이 있을 운수를 말한다. 신문까지도 <당신의 운세>를 기재하는 것을 보면 한국인들은 운세를 믿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21세기에도 점(占) 보는 사람들의 영업이 잘 된다. 운(運)은 분명히 자기의 힘에 의한 움직임이 아니니까 어떤 다른 세력에 의해 자기의 행동이 조종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의타적인 인간관이다.

사주팔자(四柱八字)를 흔히 말한다. 출생일부터 거슬러 올라가 길흉을 알아보는 점이다. 시집가기 전이나 입학시험 때가 되면 사주팔자를 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꽤 많다. 궁합을 본다든지, 토정비결을 본다든지, 점을 친다든지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하여 운명을 미리 알고 거기에 대처해 보려고 하지만 물론 그런 것들은 말짱 헛수고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데에 매달려 보는 것은 역시 인간이 약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자주성(自主性)과 그 능력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재수 없다.”는 말도 근거 없는 애매한 용어이지만 한국인들은 그 밖에도 애매한 용어를 꽤 많이 쓰며 살아간다. 가량 “황당하다.” “귀찮다,” “싸가지 없다.” “짜증난다.” “성가시다.” “싹수 노랗다.” 등도 자주 우리 입에 오르는 일상용어들인데 그 내용을 따져 보면 모두 근거 없이 하는 애매한 말들이다.

“어제는 비가 내리고 오늘은 다시 멈췄다. 다시 또 태양이 빛나고 한 송이 세월이 그렇게 했다.” 이것은 전 인권이 노래한 ‘세월’의 가사이다. 세월의 반복에서 겪는 지루함과 허무를 노래한 것인데, 정말 내가 반복이란 수레바퀴에 올라타 돌아가는 속절없는 인간일까? 자주성과 의지를 가진 인간이라면 그런 수레바퀴에서는 단연 내려와야 한다.
‘나’의 존귀함을 찾아야 한다. 나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자랑하는 것이 인간이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존귀함’이라고 표현한다. 인간은 신의 사랑을 받는 귀중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는 이 진리를 가르치기 위하여 아프리카 오지에 들어가 평생을 살았다.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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