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어느 날 캘리포니아의 산속에서 길을 잃고 죽어간 한 부부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살아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 부부는 한 방울의 기름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차안에서 추위와 굶주림 속에 나날을 보내면서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절박한 심경을 담은 유언을 남겨 놓았다.
“이 아침 우리는 길을 잘못 들어 눈 속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폭설이 우리를 덮고 있어 창문을 열 수도 없다. 아이들아 할 말이 너무 많구나. 모두들 즐겁게 살아가고 가족의 우애를 절대 버리지 말아라. 이제 어떤 일이 우리 앞에 벌어질지 모른다. 한 모금의 물이, 한 입의 음식이 이렇게 귀한 줄 몰랐다. 이를 잊지 말고 남을 원망하지 말고 감사하는 모습을 배워야 한다. 주어진 시간은 미워하고 싸우기에는 너무 아까운 시간이다. 우리는 인생을 충분히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 사랑하고 위로하고 섬기고 용서하면서 살아가자. 주어진 하루를 감사함으로 살아갈 때 꽃향기와도 같은 아름다운 향기가 주변을 진동할 것이다.”
이 부부의 마지막 유언을 보면 우리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겪는 고난과 슬픔, 고통까지도 우리가 살아있음에 느낄 수 있는 큰 기쁨이고 즐거움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우리가 눈만 뜨면 맞는 하루는 어제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죽은 자의 소중한 하루이고 귀한 시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매일 아침 좋은 일이 됐든 나쁜 일이 됐든 주어지는 것들을 행복이라 여기면서 즐겁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한인사회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경기로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고 힘들어하는 한인들이 적지 않다. 현실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스트레스를 풀고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건 얼마나 복된 일인가. 그래서 우리는 또 힘을 얻고 새 희망을 향해 도전을 하는 것이며 그래서 세상은 살맛이 난다.
요즈음 우리의 눈과 귀를 매일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 러시아 월드컵도 일종의 그런 것이 아닐까. 전세계의 축구 선수들이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펼치면서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각축전을 보면서 느끼는 갖가지 짜릿한 감동과 전율은 모두 우리가 살아있음으로 인해 느끼는 삶의 즐거움이고 생동감이다.
나라별 경기마다 주는 흥분과 희열, 긴장감과 감동의 카타르시스는 우리로 하여금 박수치고 환호하고 감격하게 하면서 우리의 스트레스와 피곤함을 한껏 풀어주는 윤활유가 되고 있다. 넘어지고 자빠지고 하면서 상대의 방어를 피해 요리 조리 공을 굴리며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모습은 마치 생존경쟁에서 다투는 우리의 현실과도 비슷해 더욱 즐겁고 흥미롭다.
선수들이 경기에서 설혹 이기지 못했다고 해도 노고에 박수쳐 줄 일이다. 기회는 또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한국이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역량을 채 발휘 못하고 0대 1로 패했지만 차후에 있을 2차 멕시코전과 3차 독일전의 승리를 다짐해 본다.
선수들이 최선만 다했다면 한국이 패배했다 해도 너무 자책하지 말자. 우리는 이번에 또 한 번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는 사실을 확연하게 경험했다. 파울이 빚은 결정적인 한 골로 인해 결과적으로 패배함으로써 경기는 반드시 정정당당하게 해야 한다는 사실도 분명히 학습했다.
선수들은 끝까지 후회 없이 뛰되, 우리는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 성패와 상관없이 우리에게는 다 소중하고 귀한 것들이다. 살아있기에 얻는 학습이고 교훈이고 소득이기 때문이다.
나태주 시인의 시 ‘끝끝내’에는 구절마다 인간의 존재 이유, 그리고 우리가 살아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복인가가 잘 묘사돼 있다.
“너의 얼굴 바라봄이 반가움이다/ 너의 목소리 들음이 고마움이다/ 너의 눈빛 스침이 끝내 기쁨이다// 끝끝내// 너의 숨소리 듣고 네 옆에/ 내가 있음이 그냥 행복이다/ 이 세상 네가 살아있음이/ 나의 살아있음이고 존재 이유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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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