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의 나라가 내 나라가 되기까지”

2018-06-12 (화) 김성실/ 연합감리교회 여선교회 인종정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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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체스터 칼럼

미국에 정착한지 15년이 넘은 40대 초반의 독신 여성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미국에서 여러종류의 직장을 가졌었고, 나이가 좀 들어 새로 전공하던 대학공부가 끝나갈 무렵 전공분야를 그만 두고 몇 해전 부동산 중개인이 되어 적성에도 맞고 수입이 넉넉한 듯 흡족한 이민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자세한 개인사정을 알지는 못하나 학생신분으로 오랜기간이 있었던 모양이고, 다양한 삶을 경험 했던 그녀는 기독교인으로서 자신의 이민 생활을 감사해 왔다. 대화 중에 행복한 미소를 띄며 “선생님, 제가 ‘남의 나라’에 와서 이렇게 기반을 잡고 살 수 있는 것은 축복이예요.”라 했다.

진정어린 그의 감사와 행복의 표현을 이해하면서도 나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어 “그럼요, 축복이고 감사할 일이지요. 그런데 자기가 ‘남의 나라’라고 하는 것은 백인들의 나라를 뜻하지요?”라 물었다. 그녀는 놀란듯 “네, 물론이지요.” 라며 설명을 기다리는 듯 했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본인들의 전공이나 적성에 관계없는 일을 하며 어렵게 삶의 터를 마련하기 마련이고, 본인들의 지난 수고를 돌아보며 그 댓가가 가져온 과정과 결과에 흡족할 때 많이들 쓰는 일반적인 표현을 그녀도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미국이 백인들의 나라라고 당연한 듯 인정을 하는 이민자들이 대부분인 것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정확한 미국 사회구조와 역사를 알아야 백인들로 부터 우리가 지금도 모르고 당하는 제도적 차별과 불이익의 근원을 이해할 수 있으며, 피부색깔에 관계없이 공정하고 공평한 댓가를 받을 수 있는 정의의 사회가 되는데 동참을 할 수 있다.

감사한 우리의 마음을 ‘남의 나라’의 주인으로 착각되기 쉬운 백인들이 아니라 ‘미 원주민들, 노예로 잡혀왔던 흑인들의 자손들, 그리고 유럽에서 이민 온 백인들의 자손들’과 더불어 사는 ‘내 나라’에 전해야 할 것이다.

일본 식민지로 산 36년의 세월은 한국인에게는 치욕적인 역사로 각인되어 식민지 생활을 한 세대들이 거의 지나간 70여년이 넘은 지금도 일본과의 관계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심지어 500여년이 넘도록 ‘남의 나라’에 침입하여 원주민들을 핍박하고 흑인들을 납치해 짐승 취급을 아직까지도 하고 있는 백인들의 주인행세, 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 것은 그들의 침략을 동조하는 결과를 낳고, 백인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취하기 위해 인종차별하는 행동을 묵인방조 하는 것도 동조하는 결과를 낳고있다.

나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그녀는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네요. 앞으로는 미국은 확실히 이민자들의 나라, 저 같은 한인 이민자들의 나라로 생각하고 살아야 겠네요.”라며 깨달음있는 답을 주었다. 얼마나 더 오랜기간 이런 대화가 얼마나 많은 이민자들과 나누어져야 이 나라가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나라, 美國’이 될까?

<김성실/ 연합감리교회 여선교회 인종정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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