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어도 수시로 춥기가 예사, 봄인가 아닌가를 거듭 생각하게 하더니 드디어 봄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서 보티첼리 작 ‘봄(Primavera, 1482년 작)’을 본 적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 봄의 아름다움을 그린 이 그림은 중앙에 비너스, 왼쪽으로 손잡고 춤추는 세 명의 여신, 대지의 님프 클로리스가 서풍 제피로스에게 잡히면서 플로라(식물의 개화를 주관하는 여신)로 변하여 꽃을 활짝 피우는 그림이다. 비너스 머리위에 사랑의 신 큐피트, 왼쪽 끝에 봄의 전령인 머큐리도 있다.
이 그림을 보면 마음이 온화해지고 화사해져 인생의 봄을 느끼게 된다. 시인 노천명은 그래서 오월을 ‘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이라 표현했다.
올해는 5월의 봄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했는데 어느덧 봄이 가고 있다. 아쉬움에 수시로 수퍼스타 K3 우승자인 밴드 버스커 버스커의 노래 ‘벚꽃 엔딩’을 듣는다. 이 노래는 2012년 3월 발매된 이래 여섯 번째 맞는 이번 봄에도 여전히 계절송으로 인기다.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울려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하는 이 가사는 중독성이 있다.
또 하나가 있다. 지난 한국 방문때 친구가 자신이 듣던 가요 700곡이 든 USB를 선물로 주었다. 뉴욕에서 이를 CD로 구워 자주 듣고 있는데 그 안에 든 ‘봄비’ (민연재 윤민수 작사)다. 이 노래 역시 저절로 따라 부르게 만든다. “봄비가 뚝 뚝 뚝 뚝 떨어지는데/ 내 맘도 뚝 뚝 뚝 뚝 떨어져 가고/...가슴을 꾹 꾹 꾹 꾹 눌러보지만/눈물은 뚝 뚝 뚝 뚝 흘러만 가고......”
봄은 춥지도 덥지도, 적당한 바람까지 있는 좋은 날씨이고 지천에 온갖 예쁜 꽃들이 피는 계절이지만 이 5월이 마냥 좋을 수만도, 찬란하지만도 않은 것은 1980년을 산 한국민들에게는 5.18.이란, 수많은 이의 꿈과 희망, 미래를 무참히 짓밟은 광주의 그날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1980년 5월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의 상황과 남겨진 사람들 이야기를 읽으며 섬뜩했고 분노했고 가슴이 저렸다. 중학교 3학년인 소년 동호는 매일 합동분향소가 있는 도청 상무관으로 들어오는 시신들을 수습한다. 억울한 혼을 위로하고자 초를 밝히면서 괴로워하는데 드디어 마지막 날, 돌아오라는 가족의 말을 듣지 않고 소년은 그곳에 남는다. 죽어간 이들, 살아남은 이들의 긴장과 불안, 상처, 아픔이 실감되는 이 소설은 작가 한강의 최고작이다.
또 5.18을 다룬 영화로 작년에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장훈 감독)가 있다. 광주의 참상을 해외에 알린 외신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분)와 그를 도운 택시운전사 김만섭(송강호 분), 광주 시민들의 이야기이다. 일당 10만원을 주겠다는 바람에 손님을 태우고 달렸지만 광주로 가는 길은 도로, 산길 모두 차단되어 있고 간신히 들어온 시내는 난장판이다. 트럭을 타고가던 대학생 구재식(류준열 분)은 대학가요제에 나가기 위해 대학에 간다는데 그를 통역가이자 안내자삼아 시위현장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군인들이 시민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것을 목격하고 이 모든 것들은 피터의 카메라에 담겨진다.
올해도 제38주년 5.18민주화 운동 기념식이 성대하게 치러줬지만 한번 뿐인 생을 꽃다운 나이에 타의에 의해 버려졌거나 살아남아서도 과거의 기억에 저당 잡힌 채 고통스런 오늘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5월은 그저 눈물겨운 달이다.
5월이 가고 있다. 5.18을 아는 한, 5월은 빛과 그림자로, 양지와 음지로 공존한다. 내년 5월에도 내후년 5월에도 기쁜 날, 슬픈 날들이 골고루 다가올 것이다. 문밖이 여름이다. 6월엔 또 어떤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 두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한다. 아무튼 신록은 더욱 무성해질 것이고 우리는 6월도, 7월도 열심히 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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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