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8년‘아트 뉴욕 페어’를 보고

2018-05-19 (토) 한영국/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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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트 뉴욕 페어가 막을 내렸다. Pier 94에서 열린 이번 전시회에는 30개국에 걸쳐 75개의 갤러리, 1,200 명의 화가들이 참석해 현대 미술의 트렌드를 보여주었다. 멀리 한국에서부터 참석한 갤러리도 두 곳이 있었다.

전시된 그림 중에는 앤디 워홀의 작품도 있었지만, 대개는 이 전시의 취지에 맞추어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 떠오르는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됐다. 첫 날 열린 VIP Preview의 수입금은 NFL 쿼터백이었다가 자신이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부터는 재단을 설립해 여러 사람들을 돕고 있는 Joe Namath, 그리고 우울증 연구를 돕는 Hope for Depression Research Foundation 에 기부된다.

그밖에도 여러 기부 단체가 파트너로 참석했는데, 유심히 본 것은 어린이 아트 뮤지움에서 연 부스였다. 그들은 관람인이 구경을 하는 동안 그들의 자녀들에게 직접 작품을 만들어보게 하는 장을 열어 미래의 화가들을 교육하고 있었다. 이렇게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자라나 언젠가는 자기 작품을 이 전시장에 걸게 될 것이다.


매년 뉴욕의 한국계 갤러리, 화가들도 많이 참석하고 있다. Space 776에서는 채림 씨의 작품이 나와 있었고(한국일보 5월9일 신문 참조), Blank Space에는 홍상식, 김병진, 고명금 씨 등의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언제나 자신의 미디움과 기법을 찾아 치열한 열정을 쏟는 화가들의 기상천외하고 독특한 작품을 보면 ‘유레카’ 소리가 절로 나온다.

거기다 그들이 완벽을 위해 쏟았을 시간과 정성과 치열함을 생각하면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가령 홍상식 씨는 우리가 콜라를 마실 때 쓰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작은 직경의 빨대를 세로로 세워 입체적인 작품을 만든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부드럽고 은밀한 색과 입체성을 띠느냐 하면 보지 못한 이에겐 설명이 불가능하다.

물질의 성질을 일부러 비튼 작품들도 있다. 김병진 씨는 철이라는 가장 무거운 재료로 풍선이라는 가장 가벼운 형태의 ‘어떤 것’을 만들었다. 풍선의 꼭지를 보면 영락 없는 고무 풍선의 비틀어져 잠긴 꼭지다. 이 풍선은 철에 자동차 페인트를 뒤집어 쓰고 누워 있는데, 형태의 표면은 또 무수한 기호로 짜여진 암호다. 그것은 이제 철이 아닐 뿐더러 풍선도 아닌 ‘그 무엇’이 되었다. 철과 알루미늄, 그리고 자동차 페인트를 이용한 다른 화가들의 작품들도 여럿 있었다.

재미있는 기법 중에 하나를 더 소개하자면, John Atwood (가명)의 작품들이다. 굳이 가명을 쓴 이 작가의 그림에는 ‘oil on Canvas’ 사인이 붙어 있지만, 실제로는 전통적인 유화 그림이 아니다. 그는 케이크를 장식할 때 쓰는 튜브에 물감을 넣고 그것을 캔버스에 짜서 그림을 그린다. 머리카락을 표현할 때는 가는 선으로 길게 늘이고, 들판을 그릴 때에는 한 점 한 점 짜붙여 입체감을 더한다. 일종의 점묘법인데, 색을 섞는 일 없이 이 점들이 모여 컬러를 만든다.

개인적으로, 근래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는 돌연한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사람도 만나기 싫고 일도 시들해졌다. 인생 전반이 다 시들해질 무렵, 이 전시를 보게 되어 다행이었다고 할까. 저렇게 치열하게 사는 인간 동료들도 있는데, 하는 새삼스런 자각에 서서히 나의 문도 다시 열리는 것 같다. 아무쪼록 많은 화가들의 선전을 빈다.

<한영국/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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