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누군가의 스승이 되자

2018-05-18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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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현재 일부 교사들에 의해 5월15일 스승의 날 폐지 청원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카네이션 한송이 조차 학생대표만 줄 수 있다니 2016년부터 시행된 김영란법 강도가 세긴 센 모양이다.

원래 참 스승은 아이의 잠재성을 발견, 개발시켜 세상에 내보내며 인간의 도(道), 올바른 길을 가리키는 자이다. 이 스승을 공경하는 한국 전통의 의미가 뉴욕에선 잘 전달되어 매년 뉴욕한인학부모회 주최로 열리는 스승의 날 행사가 성황을 이루고 있다.

오는 24일 열리는 제27회 스승의 날 행사에 25학군과 26학군 공립초중고 교사 등이 초대되어 학교와 한인가정, 한인학생간 이해와 신뢰를 증진시킨다고 한다.


고전과 위인전에서 숨어있는 스승을 만나는 방법도 있지만 살아있는 사람 중에서 스승을 찾는다면 그것만큼 바람직한 일도 없다.

우리는 18년간의 오랜 교육기간동안 담임부터 학과목 교사까지 많은 선생을 만난다. 나 역시 고마운 스승도 만났지만 초등학교 5학년 담임선생은 부정적인 기억으로 잊을 수가 없다. 미혼인 그 여성은 ‘와이로’ (뇌물) 잘 쓰는 엄마를 둔 아이들만 노골적으로 예뻐하고 웃어주었다.

하루는 수업 도중에 육성회비 못낸 사람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하는데 10여명 정도가 쭈빗 거리며 일어났다. 부반장인 나까지 일어서니 아이들이 놀랐다.

“너희들은 벌써부터 떡잎이 노오래. ” 하면서 독설을 퍼붓는 여교사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됐고 집으로 가서 엄마한테 돈 받아오라고 교실에서 내보냈다. 한창 자라는 새싹들에게 어떻게 잎이 노랗다는 인격 모독을 하는 것인지, 육성회비를 못내는 것이 어찌 아이 탓인가.

당시 아버지는 부산에서 교사 박봉으로 6남매를 키웠고 오빠가 대학을 가면서 식구들 반은 서울에서 살았다. 집으로 가니 엄마가 대청마루에서 신문을 보고 있다가 왜 도로 왔니? 하고 물었다. 신발주머니를 찾는 척 하다가 다시 학교로 갔다. 그날이후 엄마는 학교에 낼 돈은 아무리 반찬값이 없어도 먼저 주었다. 불행히도, 지금도 그 선생 이름 석자는 뚜렷이 기억한다.

그 선생은 수시로 부잣집 아이를 수업 중간에 집으로 보내 엄마 오시라 했고 그 아이 엄마는 흰 봉투 들고 치맛자락 날리며 학교에 왔다. 먹을 것과 선물을 받아들면 선생은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행히 자라면서 내 주위에 스승다운 스승이 있었다.

영등포 지역 고등학교에서 수십년간 일하고 퇴직한 이병주 교사는 “옷 좀 사입지.” 하면 “새옷 입고 학교에 갈 수가 없어. 등록금 못내는 애들이 많아.”했고 “등록금 대신 내주고 못 받는 거 아냐?” 하면 “아냐, 그 부모가 다음 학기에는 꼭 보내줘, 그냥 먼저 내주는 거야” 하고 태평하게 대답했었다.


김재영 선생님은 여고생에게 커다란 인생의 그림을 제시했고 “오늘 하루도 찬란한 날이 될 것이다”는 긍정적이고 밝은 마음으로 살 것을 평생 머리에 각인시켰다.

천만다행으로 뉴욕에도 몇 분 있다. 화나고 분한 일, 어려운 일을 당하면 두서없이 하소연해도 끝까지 다 듣고 조언 해주신다. 말 할 상대가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서서히 풀려간다.

학교에서나 사회에서 참 스승을 만났다면 당신은 운이 좋은 편이다. 만일 스승을 찾기 힘들다면 스스로 누군가의 스승이 되는 것은 어떨까.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스승, 자신이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얼마나 깊은 지식과 혜안, 바다 같은 포용력에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

늘 그 자리에 있으면서 누군가 장애물에 부딪쳤을 때 들어주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버팀목이 되어주는 그런 스승, 우리 모두 누군가의 스승이 되려 애쓴다면 세상은, 직장생활은 좀 더 편해지지 않을까. ‘스승’ 이란 말이 그립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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