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육칼럼

2018-05-16 (수) 대니얼 홍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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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이 책은 에밀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이 책은 책장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자리를 차지할 것이고 가장 오래 간직될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에밀이 성장하는 동안 판단력 수준을 측정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 플리니우스, 뷔퐁도 아닌 ‘로빈슨 크루소’라는 소설책이다.”

서양 교육사에 지각변동을 불러온 루소가 ‘로빈슨 크루소’를 교육 길라잡이로 선정한 이유는 타인의 시선ㆍ편견ㆍ규제가 없는 외딴 섬에서 홀로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는 로빈슨을 롤 모델로 삼아 에밀이 자신의 쓸모를 정확히 판단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로빈슨은 안정과 편안함을 추구하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았고, 특히 법률 분야의 직업을 선택할 것을 종용받았다. 아버지의 경험에 따르면, 가장 좋은 커리어는 고된 노동과 궁핍을 피하고 타락ㆍ과욕ㆍ사치ㆍ자만심으로 범벅이 되어 갑질을 저지르는 유혹에 빠지지 않는 직종이다. 삶의 매운 맛을 느낄 필요없이, 큰 변동없이, 애타게 피땀흘릴 필요없이, 잔잔하게 살 수 있는 직종을 아버지는 로빈슨에게 권했다.


그러나 로빈슨은 18세가 되던 해 전형적인 청소년 티를 냈다. 아버지의 조언을 무시하고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배를 타기 위해 집을 나간 것이다.
“바다로 나가는 것 외에 나는 무엇에도 만족하지 못했다. 이런 나의 성향으로 결국 아버지의 뜻, 아니 아버지의 명령을 정면으로 들이받았고 어머니와 친구들의 설득도 내쳤다. 그런 나의 성향에는 언젠가 나를 비참한 삶으로 끌고 가는 그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았다.”
로빈슨의 직감은 현실로 나타났다. 승선한 배가 난파해 표류 끝에 섬에 도착한 로빈슨은 살아남기 위해 혼자서 28년 동안 고전분투를 한 것이다. 아버지와의 충돌ㆍ가출ㆍ섬에서의 나로서기로 이어지는 로빈슨의 삶을 어떤 이는 무모한 짓으로, 어떤 이는 영국 제국주의의 자락 모습으로 보지만, 오늘날의 구글 은하계를 살아가는 학생들에게는 최적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다.

잔잔ㆍ안정ㆍ안락함을 추구하는 패러다임에 반기를 들고 풍랑과 불확실로 점철된 바다로 아무런 계획없이 뛰어든 나이키(Just Do It)식 행동은 전형적인 창업자 (entrepreneur)의 모습이다. 그의 섬 생활 또한 창업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로빈슨은 매슬로가 인간욕구 단계설에서 말한 가장 기본적인 두가지 요소, 즉 먹고 입고 자는 것과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을 구축하기 위해 농기구ㆍ카누ㆍ수확물 보관용기ㆍ국을 끓이기 위한 질그릇을 만들었다. 그 제작 과정에서 로빈슨은 요즘 한창 부르짖는 창의력과 창조성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또한 탁자를 만들었을 때 마음에 썩 들지 않아 더 잘 만드는 방법을 궁리하는 과정에서는 연구와 개발(R&D)능력, 거주 공간을 넓히려고 2주 넘게 동굴을 깊이 팔 때는 집중력과 지구력, 외부의 습격으로부터 보호하려고 두껍고 튼튼한 담을 쌓을 때는 용의주도한 판단력을 각각 보여주었다.

나로서기 과정에서 마치 일인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한 로빈슨은 이렇게 말했다.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면 필요한 기술을 누구나 습득할 수 있다. 예전에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도구이지만 시간을 두고 궁리하면 필요한 도구도 물건도 만들 수 있다”

“섬에서의 내 삶은 육지에서 사람들과 섞여 살 때보다 오히려 더 행복했다”라는 로빈슨의 고백은 여름방학을 맞을 학생들이 곱씹어야 할 말이다. 이번 여름에는 학교(육지)를 떠나 어떤 모습의 나로서기(섬)를 경험해볼까를 질문하며.

<대니얼 홍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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