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육칼럼

2018-04-11 (수) 대니얼 홍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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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시같은 대학

(교육전문가)


‘미국 소비자 협의회’자료에 따르면 구매자는 자동차를 구입할 때 엔진 성능, 안전성, 고장률 등 기능을 중시하는 이성적 판단보다는 브랜드에 대한 막연한 느낌(볼보는 안전하다), 디자인(미니는 깜찍하다), 차별화 상징(롤스로이스는 아무나 못산다)등 감성적인 이유로 어떤 차를 살지 최종 결정을 한다.

몇 군데 대학으로부터 받은 합격 통지서를 놓고 등록 대학을 결정할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자신의 목적에 따라 전공, 교내외 활동, 캠퍼스 환경, 재정보조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한 후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 선택하기 보다 남들의 귀에 익은 대학으로 쏠린다. M군은 유에스 뉴스, 프린스톤 리뷰, 월간 워싱턴, 포브스에 나오는 대학 순위를 보고 X 대학에 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자신의 결정에 대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X 대학은 한인들이 잘 모르던데”라고 던진 말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다 결국 주변 사람들이 알아주는 대학으로 등록하기로 결정했다.

심지어 어떤 학생들은 화려한 합격통지서와 함께 따라온 대학 매스코트,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대학 티셔츠를 받고 감동을 받아 디파짓을 보냈다.

‘대학 미디어 연구소’가 50개 주요 대학의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60% 학생이 재학중인 대학에 대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답변했다. 날씨가 나쁘다는 불평부터, 멀리 떨어진 친구가 그립다, 쇼핑할 곳이 없다, 학생들이 너무 놀기만 한다, 너무 공부만 한다 등등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모든 선택과 결정에는 후회가 따른다. 선택은 다른 옵션을 포기하게 만들고 포기는 후회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다른 대학에 등록할걸”이라는 후회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없을까.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그린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독일 기자 힌츠페터는 서울에서 광주를 가기 위해 기차나 버스를 타지 않고 택시를 이용했다. 힌츠페터는 자신의 취재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목적지만 다니는 기차와 버스를 피하고 승객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즉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택시를 선택했다. 만일 힌츠페터가 택시를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그 당시 광주까지 갈 수 있었을까. 설사 택시를 이용했다 하더라도 만일 택시 기사가 위험을 회피하려고 도중에 차를 돌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대학 선택에서도 기차, 버스, 택시가 있다. 400~500명 학생들로 가득 찬 강의실에서 일방적으로 퍼붓는 강의, 질문이 있어도 할 수 없고 수동적으로 듣고만 있어야 하는 분위기, 자신의 연구에 쫓겨 학생과 상담할 시간이 없는 교수, 리더십 기술과 감성 지능을 연마할 수 있는 기회라기 보다 멤버십 숫자 올리기에 급급한 캠퍼스 클럽 활동 등등이 바로 기차와 버스처럼 운행되는 대학의 분위기다.

택시처럼 운행되는 대학을 선택하려면 두 가지 질문을 해야 한다. 첫째, 모든 정보와 지식이 키보드를 누르는 손끝에 와있는 인터넷 시대에 대학에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둘째, 앞으로 4년간 나와 꾸준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교수와 동료가 있을까라는 질문이다. 즉 만남의 가능성을 따져보는 것이다.

대학생의 학업성취에 관한 논문이 지난 40여년 동안 25편 넘게 발표되었다. 학업능력, 재정상태, 가정환경, 목적의식 등 다양한 여건이 작용되었지만 가장 치명적인 요소는 동료 학생 그리고 교수와의 만남과 대화에 달려있다. 그 기회가 많은 학생일수록 자긍심, 성취도가 높고 졸업도 제 때 한다.

<택시운전사>에서 힌츠페터가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만남과 대화에 있었다.

<대니얼 홍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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