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애틀‘인권 대부’하늘나라로

2018-04-0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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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 맥킨니 목사 향년 91세로 별세

▶ 흑인은행 창설 등 사회정의 위해 한평생

시애틀‘인권 대부’하늘나라로
시애틀을 넘어 전국적으로 인종평등과 인권향상을 위해 한평생 헌신해왔던 사무엘 베리 맥킨니 목사가 별세했다. 향년 91세.

맥킨니 목사는 지난 7일 시애틀의 양로원에서 딸 로라 엘렌 맥킨니 박사 등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고인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98년까지 40년간 시애틀의 대표적 흑인교회인 마운트 시온 침례교회의 담임을 맡아 흑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을 뿐 아니라 흑인은 물론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인종간 평등을 위해 헌신했다.


1926년 12월28일 미시간주 플린트에서 역시 목회자였던 웨이드 햄튼 맥킨니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맥킨니 목사는 당초 법조인의 꿈을 꾸다 아버지의 길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 공군으로 복무한 뒤 모어하우스 칼리지에 입학했다. 이곳에서 세계적인 흑인운동지도자이며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만나 평생 친구로 지냈다.

그는 1949년 대학을 졸업한 뒤 뉴욕 콜게이트 신학교에 입학해 1952년 졸업, 로드 아일랜드 교회 등에서 사역하다 1958년 시애틀 마운트 시온 침례교회로 옮겼다. 그는 이 교회 담임을 맡아 흑인 중심의 교인을 3배로 늘려 2,500명이 넘는 대형 흑인교회로 성장시켰다. 그는 일반 시중은행들이 흑인들에 대출해주지 않은 것을 보고 흑인은행을 창설하는데 주역을 맡았다. 1961년에는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시애틀로 초청해 초대형 흑인인권 집회를 주도해 인종간 평등과 인권에 대한 경종을 울렸으며 역시 1960년대 시애틀, 앨라배마, 워싱턴DC에서의 인권집회 등을 주도했다.

1980년대 중반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호주의에 반발해 시애틀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기도 했다. 시애틀 인권위원회는 물론 흑인 직업교육을 시키는 시애틀 고용기회센터 창설 멤버로도 활약했으며 프레드 허치슨 암센터, 메레디스 매튜 이스트 메디슨 YMCA 등의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1976년 <흑인 관점에서 본 교회 경영>이란 유명한 공저를 남기기도 했으며 1998년 마운트 시온침례교회 은퇴 뒤인 2004년 시애틀 시의회는 만장일치로 마운트 시온침례교회 인근인 시애틀 19가 도로를 ‘맥킨니 목사의 길’로 명명했다.

그와 59년을 해로한 부인 루이스 맥킨니는 지난 2012년 먼저 세상을 떠났으며 큰 딸인 로라 엘렌 맥킨니 박사와 둘째 딸 로다 맥킨니-존슨을 유가족으로 뒀다. 장례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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