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되새기면서 고난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마지막 길은 말 그대로 고난이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얼굴에 침을 뱉고 조롱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저항 없이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은 온 인류를 죄에서 구하시는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우리가 치러야 할 죗값을 대신 치르신 희생과 사랑의 길이었습니다.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16세기 일본에 복음이 전해지던 시대를 배경으로 복음을 받아들인 기독교인들이 목숨 걸고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을 그렸습니다. 박해가 심해지면서 선교사들도 예수님을 믿지 않겠다고 배교할 정도였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기독교인들은 핍박을 피해서 외딴섬을 옮겨 다니면서 비참하게 살아갑니다. 그래도 이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주는 은혜와 하늘나라를 향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판명되면 목숨을 잃게 되는 위험한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목숨을 구하는 것이 쉬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새겨진 판자를 밟으면 살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예수님의 얼굴을 밟고 살아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밟았지만, 십자가에 침을 뱉으라는 요구에 불복해서 십자가형을 당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파도가 몰아치는 바닷가에서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어떤 이들은 금방 숨을 거두었지만, 며칠을 십자가에 매달려서 파도와 싸우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들은 “나는 하나님 나라로 간다네” 찬송하면서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에서 장엄하게 순교했습니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은 진정한 신앙이 무엇인지, 과연 예수님의 얼굴을 밟고 살아남은 자들을 무조건 배신자라고 몰아칠 수 있는지, 핍박과 순교의 시대에 하나님의 침묵을 어떻게 볼 것인지 등등 수많은 질문을 제기합니다. 신앙을 어느 한 가지로 단순하게 정의할 수 없음도 알려줍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을 믿고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 쉽지 않음을 깨우쳐줍니다.
소설의 제목 <침묵>은 말 그대로 예수님의 침묵입니다. 예수님을 믿다가 목숨을 잃는데도 당사자인 예수님께서 보고만 있으시냐는 것입니다. 작가는 소설의 마지막에 그 답을 줍니다:“나는 너희들의 아픔과 괴로움을 함께 나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가는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그 길을 걷고 계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신앙을 너무 가볍게 여깁니다. 쉽게 말하고 쉽게 결심하지만, 실제 우리의 삶은 신앙과 동떨어질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간다고 말하지만, 자신이 자초한 어려움을 두고 자기 십자가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조금만 멈춰서 생각해보면 신앙의 길을 가는 것은 어렵고 고민스러운 여정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나서자마자 부딪치는 질문과 문제, 그리고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만만치 않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간다는 말을 섣불리 입 밖에 내기 어렵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감옥에 갇혀서 결국 순교하신 주기철 목사님의 솔직한 고백이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단번에 받는 고난은 이길 수 있으나 오래오래 끄는 장기간의 고난은 참기 어렵습니다. 칼로 베고 불로 지지는 형벌이라도 한두 번에 죽어진다면 그대로 이길 수 있으나 한 달 두 달 1년 10년 계속하는 고난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것도 절대 면할 수 없는 형벌이라면 할 수 없이 당하지만, 한 걸음만 양보하면 그 무서운 고통을 면하고 도리어 상 준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넘어갑니다. 말 한마디만 타협하면 살려주는데 용감한 신자도 넘어지게 됩니다. 하물며 나 같은 연약한 약졸(弱卒)이 어떻게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어 배기겠습니까? 다만 주님께 의지하는 것뿐입니다.”
고난 주간을 보내면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십자가의 길을 걷기로 다짐하고 주의 도움을 구합니다. “주님, 내 힘으로 할 수 없으니 진정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는 믿음과 힘과 용기를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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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용 목사/SF 참빛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