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의도 순복음교회 미주 1호 선교사, 1974년 파송받아 목회 시작
▶ “영향력있는 진실한 크리스천 돼야” “성령이 내 목회의 주도자. 주님앞에 엎드리는 시간 늘어야 변화 “
오관진 목사가 14일 교회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통해 그간의 목회와 은퇴후 계획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예수인교회 에서 43년간 목회를 해 온 오관진 담임 목사(74)가 오는 2월 25일 은퇴한다.
오관진 목사는 지난 1974년 11월 2일 여의도 순복음교회(담임 조용기 목사)의 공식 미주 선교사 1호로 파송을 받아 샌프란시스코에 왔다.
오 목사는 현재 교회당 건너편에 있는 같은 순복음 교단의 Glad Tidings Church (1280 Webster St. S. F)의 2층 다락방에서 박 여호수와 목사가 개척(1973년 1월)한 순복음 상항교회 2대 담임으로 목회의 첫 걸음을 내 디딛었다.
그 당시 샌프란시스코지역에서 6번째 시작한 한인 교회 였으며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첫 해외 선교 교회였다. 오관진 담임 목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간의 목회 내용과 은퇴 배경, 계획등을 들어봤다.
-오랜기간 일선 목회에서 은퇴한 배경은 ?
▲미국 순복음교단 소속 교회로 은퇴 연령에 제한이 없다.
그래서 목회자로 부족한 점이 있지만 ’할수 있을때 까지’ 목회를 할 생각 이었다. 그러던중 지난해 4월 기도중에 갑자기 하나님이 ‘리더쉽을 바꾸라’는 마음을 주셨다. 하나님이 교회의 주인이시고 목회자는 주님에 매여 있는 종이다. 주님의 명령에 따라 은퇴를 결심했다.
30대에 부임하여 청춘과 전 생애를 바친곳으로 교회당에 나의 손떼가 묻지 않은 곳이 없다. 미련과 섭섭함도 있었다. 은퇴 준비가 안된 상태였지만 지난해 4월에 운영위원회를 개최하여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후임자로 청년부를 담당 해오던 김희영 목사를 선정후 그 동안 설교와 행정등 검증을 거쳐 2주전에 교인들의 신임 투표 결과 절대 다수의 찬성으로 오는 25일 제3대 담임 목사로 취임하게 됐다.
-40여년 목회를 되돌아 보면 ?
▲주님이 다 하셨고 내가 무엇을 했다고 내놓을 것이 없다. 주님이 크신 은혜로 써주시어 지금까지 오게 됐다. 주의 종으로서 주님의 뜻을 이루기위해 온전히 헌신하지 못했다.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양떼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상처를 주기도 했었다.
외형적으로는 현재의 교회당을 마련 한것이 있다. 미국 교회당을 빌려 목회중 길 건너에 개발업자가 건축을 못한 빈 공터가 있어 이민 초기 교인이라 돈은 없었지만 믿음으로 ,지방회가 도와주어 구입할 수 있었다. 본당 건축공사는 77년에 시작하여 80년 완공했으며 나중에 3층의 교육관을 신축했다.
-일관된 목회 철학이나 목회 중점은 ?
▲사회에 예수의 영향력을 끼칠수 있는 진실한 크리스천(Real Christian)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목회 철학이다. 그래서 교회 이름 변경에 부담이 있었지만 ‘순복음상항교회’에서 ‘샌프란시스코 예수인교회’로 바꾸웠다. 크리스천은 초대교회나 청교도의 신앙을 본받아 참된 크리스천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 드리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래 보수적인 서울 영락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하다가 친구의 권유로 서대문 순복음교회에 갔다가 조용기,최자실 목사를 만나고 그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강력함에 매료되어 교회를 옮겼다. 성령이 충만해야 심령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은연중에 보고 배웠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을 받기위해 기도에 전심을 다하는 기도 중심의 교회가 되기위해 힘써왔다.
-은퇴후 계획은 ?
▲일단 쉬고 쉽다. 그간 휴가도 여행도 못 다녔다. 뜬금없이 미국에 온 것도 하나님의 뜻이었다. 평생을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서 남은 신앙의 여정도 인도해 주실것으로 믿고 있다.
-이민교회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
▲나는 목회가 피곤하고 힘들다고 생각 한적이 없이 지칠줄 모르고 달려 왔다.
하나님의 은혜로 수퍼 파워를 가질수 있었다. 목회자는 학문과 신학,통찰력도 있어야 하지만 주님앞에 엎드리는 시간이 더 많아야 한다. 예수님도 사역에 나서기전 기도로 도움과 지혜를 구했다. 이럴경우 섬기는 교회와 미국 전체에 엄청난 변화와 성장을 이룰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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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