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대부분 20대에서 50대의 건강한 사람들이었다. 하는 일들도 다양했다. 대학생, 어부, 간호사, 주부, 교사, 군인, 검사 등등. 그들 중에는 갓 결혼한 신혼 주부, 어린 자녀를 둔 부모, 그리고 부모의 유일한 자녀인 젊은이도 있었다. 그런데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고 모두 갑자기 죽었다. 남자 22, 여자 36, 총 58명! 지난 10월 1일 한 악마의 무차별 총기 난사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졸지에 잃은 유가족들의 삶은 어떨까? 지옥일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몸을 마음껏 움직일 수 없는 평균연령 79세의 고령자들었다. 지난 해 75주년 결혼 기념일을 보냈던 행복한 100 세와 98 세의 부부, 아름다운 언덕 집에서 지난 주말 생일파티를 즐겼던 결혼 55년차 76 세와 75 세 부부, 그리고 휠체어에 의지하며 홀로 고군분투하던 사람 등등. 그런데 그토록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기고 모두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현재까지 40명. 지난 8일 악마의 돌풍 (diablo wind) 을 등에 업고 나파와 소노마카운티로 번진 산불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이다. 게다가 5,000 채 이상의 가옥과 빌딩들이 전소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추억이 담긴 거처를 잃은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 지옥일 것이다.
불과 2주 사이에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들을 접하니 마음이 무겁다. 게다가 며칠 동안 산불 연기와 냄새 그리고 흩날리는 재를 털어 내면서 지내다 보니 그런 비극이 바로 내 곁에 있음을 실감한다. 그 누가 지구 최고의 문명국에서 이런 비극이 발생할 것이라고 상상했을까? 멀리는 911 테러부터 가깝게는 무차별 총격 및 산불까지 겪으면서 이 세상에 그 어느 곳도 안전지대가 없음을 절실히 깨닫는다. 언제 어디서 죽음과 이별과 같은 상실의 고통이 내게 찾아올 지 모를 일이다.
몇주 전 잘 아는 분께서 아직도 젊은 사랑하는 동생이 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며 깊은 슬픔을 호소하셨다. 그러면서 그 심정을 한마디로 표현하신다:“목사님, 마음이 지옥 같아요!”그런데 우리 주변에 이와 유사한 아픔을 겪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 자식이 마약과 범죄에 연루되어 삶이 혼돈이라고 하시는 분, 사랑했던 약혼자가 알고보니 유부남이라고 고백하는 분, 믿었던 동업자가 배신을 하고 도망가서 파산선고가 불가피 하다는 분 등등.
그래서 고통과 분노에 찬 사람들이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은 왜 저 악마의 산불을 잡지 못하시고 거동이 불편한 무고한 40명을 데려 가셨지요? 하나님은 왜 라스베가스의 악마를 그냥 놔 두셔서 꿈과 행복을 누려야 할 무고한 48명을 죽게 하셨지요? 하나님은 왜 5살 어린이가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계실까요? 하나님은 왜 사기꾼을 내 곁에 두셔서 내 인생을 이렇게 꼬이게 하실까요? 하나님은 왜? 하나님은... 하나님은... 이에 대한 그럴듯한 대답들이 많다: “더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살라는 하나님의 뜻이예요” “기도가 부족해서 그래요” “좀 더 착하게 살고 인내하며 살라는 신호예요” “더 좋은 것을 주려고 그럴거예요” 등등.
물론 위로하기 위한 대답들이다. 그런데 위로보다는 오히려 “제기랄, 너도 한번 당해봐” 라는 분노만 증폭시키는 경우가 더 많다. 차라리 아무말 없이 그들의 아픔을 들어주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울고, 함께 그 고통의 길을 걸어가 준다면 어떨까? 새로운 아침이다. 그런데 상쾌함 보다 여전히 나무 타는 냄새가 몸 속으로 파고든다. 하늘은 아직도 타고 있는 산불연기로 인해 잿빛이다.
마음이 착잡하다. 안타깝다. 2,000년 전 예루살렘 외곽 골고다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고 끌려가시던 예수의 심정은 어땠을까? 십자가 위에 달려 조롱과 배신 그리고 상실의 고통을 겪으시던 예수의 심정은 어땠을까?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악의 세력을 단번에 제거해버리고 싶지 않으셨을까? 그럴 힘도 있지 않으셨는가? 하지만 거절하고 싶은 그 고통의 잔을 묵묵히 마시며 죽어가셨다.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이해하며 함께 슬퍼하고 함께 울기 위해. 지옥의 아픔을 함께 겪으시기 위해.
부디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위로가 안되는 지옥같은 상실의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동행 하시는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도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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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철 목사/ 엘세리토 천성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