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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보혁갈등 속 교황 ‘개혁 속도내기’

2017-07-05 (수) 유정원 종교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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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파 거두인 뮐러 신앙교리성 장관 전격 해임

▶ 가장 강력한 권한 가진 추기경 2명 잇달아 퇴출

교황청 보혁갈등 속 교황 ‘개혁 속도내기’

프란치스코 교황(왼쪽)과 펠 추기경이 교황청에서 담소하고 있다. <연합>

교황청 안의 보혁 갈등이 깊어지면서 교황의 개혁 발걸음도 한층 빨라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청 내 보수파 거두로 꼽히며 교황과 충돌해온 게르하르트 뮐러 신앙교리성 장관을 전격 해임했다.

교황청은 1일 성명을 내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5년 동안 신앙교리성 장관직을 수행하온 뮐러 추기경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후임으로 루이스 페레르 신앙교리성 차관을 임명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교황청은 사흘 만에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추기경)에 이어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추기경 2명이 잇따라 물갈이되는 전례 없는 격변기를 맞았다.


온화한 성품의 신임 페레르(73) 장관은 스페인 출신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가톨릭 수도회인 예수회 소속이다. 물러나는 독일 출신의 게르하르트 추기경(69)은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2012년 가톨릭 교리를 관장하는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임명된 인물로 교황청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지닌 추기경 중 한명으로 꼽힌다고 이날 연합뉴스는 보도했다.

그는 전통적으로 가톨릭에서 죄인으로 인식해온 이혼자, 재혼자도 성체 성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침에 반대하는 등 진보적인 성향의 교황과 교회의 핵심 개혁 의제에서 충돌하며 교황과 껄끄러운 관계를 형성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엄격한 가톨릭 교리로 신자들을 배제하기 보다는 자비로 포용하는 교회를 지향하는 교황은 지난해 4월 발표한 사랑과 결혼, 가정생활 등에 대한 권고를 담은 ‘사랑의 기쁨’에서 이혼자나 재혼자에게도 개별적 상황에 따라 사제의 판단에 의해 성체성사가 허용될 수 있음을 시사해 교회 내 보수파의 거센 반발을 샀다.

결혼의 영속성을 강조하고 있는 가톨릭은 교회의 허가 없이 배우자와 이혼한 뒤 재혼하면 부정을 저지르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뮐러 추기경은 지난 2월 “혼배 성사로 성립된 결혼은 하늘도 땅도, 천사도 교황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하며 교황에게 대놓고 반기를 들었다.

뮐러 추기경은 수십년 동안 가톨릭의 치부로 인식돼 온 사제의 아동 성범죄의 내부 은폐를 밝히고, 이를 엄단하고 근절하기 위한 프란치스코 교황 주도의 개혁 노력에 저항해온 교황청 내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지목되고 있다.

통상 교황청 관료의 은퇴 연령이 75세임에도 불구하고 교황이 69세인 뮐러 추기경의 임기를 연장하는 것 대신 신앙교리성 장관 자리에 새로운 인물을 앉힌 것은 개혁 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 가톨릭의 오랜 치부인 아동성범죄 파문에 직접적으로 휩싸인 교황청 내부 분위기를 다잡기 위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난달 23일 교황청 서열 3위로 꼽히는 조지 펠(76) 교황청 재무원장이 과거에 아동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모국 호주에서 기소되며 바티칸과 전 세계 가톨릭계를 충격으로 몰고 갔다.


교황은 결백을 주장하고 있는 펠 추기경이 호주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할 수 있도록 정식 휴가를 내주었다. 그러나 교황청 안팎에서는 벌써 후임 재무원장 물망에 오른 사람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등 그의 교황청 퇴출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교황이 아동 성추행을 뿌리 뽑고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창설한 아동보호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했던 아일랜드 출신의 마리 콜린스는 “펠 추기경은 교황청 내부에 숨어서는 안됐다”며 “그가 기소돼 호주로 떠나기로 한 것은 긍정적이긴 하지만 너무 늦은 것”이라고 바판했다.

그는 지난 3월 교황청 관료 조직의 아동 성범죄 근절 노력에 대한 비협조와 저항에 좌절을 토로하며 아동보호위원회 위원직에서 사퇴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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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원 종교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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