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서 측정하는 진료실혈압보다
심혈관 질환 예측 용이하지만
집에서 재는 환자는 30%에 불과
기상 후 1시간ㆍ취침 전 측정 중요
고혈압은 최고(수축기) 혈압 140㎜Hg, 최저(확장기) 혈압 90㎜Hg 이상일 때다. 보통 두 번 이상 병원에서 측정된 평균값으로 구한다.
고혈압이 성인 3명 가운데 1명꼴이다. 30세 이상 남성의 35.1%, 여성의 29.1%다(질병관리본부 국민건강통계). ‘국민병’으로 불리는 이유다. 세계적으로도 고혈압 합병증으로 매년 900만명이 사망한다(세계보건기구). 별다른 증상이 없어 대부분 건강검진이나 다른 질환으로 병원을 찾았다 우연히 발견한다. 관상동맥질환, 뇌혈관질환 등 심혈관 질환의 가장 주요한 위험요인이라 ‘침묵의 살인자’라고도 불린다.
정부와 대한고혈압학회 등이 나서 고혈압 적정 관리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지만 관리가 부실한 것이 현실이다. 고혈압 치료자 10명 중 3명이 적정 혈압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고, 고혈압 관리의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는 집에서 혈압을 측정하는 이도 30%에 불과하다. 김철호 대한고혈압학회 이사장(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교수)은 “가정혈압은 혈압 변화를 직접 확인해 환자가 치료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동기를 주고, 약물 치료가 증상 개선에 효과적인지 확인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고 했다. 지난 17일은 세계고혈압연맹가 정한 ‘세계 고혈압의 날’이었다.
혈압을 낮추고 심뇌혈관 질환을 예방하려면 정기 검진을 통한 꾸준한 치료, 생활습관 개선, 아침저녁 혈압 측정 등 3박자를 고루 갖춰야 한다. <대한고혈압학회 제공>
“집에서 정기적으로 혈압 체크해야”
혈압 측정법은 세 가지다. 의료기관에서 측정하는 ‘진료실혈압’, 집에서 전자혈압계로 재는 ‘가정혈압’, 24시간 활동혈압계로 재는 ‘활동혈압’ 등이다.
이 가운데 가정혈압이 간편하고 경제적이면서도, 심뇌혈관 질환 발생예측에 용이하다. 진료실혈압은 측정주기가 일정하지 않아 상황에 따라 혈압이 실제와 다르게 나올 수 있다. 이런 단점을 가정혈압이 보완한다. 활동혈압은 시간 별 혈압 변화를 알 수 있지만 24시간 동안 측정장치를 착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일본 고혈압학회 가이드라인(2014년)은 ‘진료실혈압과 가정혈압에 차이가 있을 경우, 가정혈압 측정 결과를 기반으로 한 진단을 더 우선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대만 고혈압학회도 가이드라인(2015년)을 통해 가정혈압이 진료실혈압보다 심혈관 사전 예측력이 강하며, 고혈압치료제의 효과를 평가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밝혔다.
대한고혈압학회도 가정혈압 측정을 독려하고 있지만, 가정혈압 측정이 30% 수준에 그치고 있다. 대한고혈압학회가 세계 고혈압의 날을 맞아 고혈압 환자 1,000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 가정혈압을 알거나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한 환자는 60.6%에 그쳤다. 더 큰 문제는 실제로 가정에서 혈압을 측정하는 환자는 그 절반 수준인 31.4%뿐이었다.
신진호 한양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고혈압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려면 진료실혈압은 물론, 가정혈압을 정기적으로 재는 것이 필수”라고 했다. 영국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가정혈압 측정이 고혈압 관리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혹시 백의고혈압? 가면고혈압?
진료실혈압과 함께 가정혈압으로 ‘백의(白衣)고혈압’과 ‘가면고혈압’을 판단할 수 있다. 백의고혈압은 진료실에서만 혈압이 높게 나오는 경우다. 하얀 색 가운을 보면 긴장해 혈압이 올라간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대한고혈압학회에서 2, 3차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시행한 활동혈압 모니터 등록사업의 1기 자료에 등록된 1,916명의 자료에 따르면, 고혈압 진단을 목적으로 활동혈압 모니터를 시행한 환자에서 백의고혈압은 14.9%였고, 진료실에서 고혈압 진단을 받은 환자 중 17.4%가 백의고혈압이었다.
반면 가면고혈압은 진료실에서는 정상혈압이지만 가정혈압이나 활동혈압은 더 높게 나타나는 것이다. 고혈압약을 먹고 있는 환자가 진료실에서 혈압을 측정할 때 나오기 쉽다. 가면고혈압 환자는 혈압 수치가 과소 평가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활동혈압 모니터 등록사업 자료에 따르면 고혈압 진단을 목적으로 활동혈압 모니터를 시행한 환자의 17.6%, 고혈압약을 먹고 있는 환자의 13.8%, 그리고 진료실혈압이 조절되는 환자의 35.1%가 가면고혈압이었다.
기상 후 ‘아침혈압’, 자기 전 ‘저녁혈압’ 체크
고혈압 예후는 제대로 관리하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고혈압을 목표혈압으로 조절한 국내 환자의 비율은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혈압을 낮추고 심뇌혈관 질환을 예방하려면, 정기검진을 통한 꾸준한 치료, 생활습관 개선, 아침저녁 혈압측정 등 삼박자가 중요하다.
아침혈압은 기상 후 1시간 이내, 저녁혈압은 잠자리에 들기 전 측정한다. 혈압을 잴 때는 조용한 장소에 팔꿈치 높이의 테이블과 검증된 전자혈압계를 두고, 5분간 등을 기대어 편안하게 안정을 취한다.
측정 버튼을 누른 뒤에는 측정이 끝나기 전까지 가능한 한 움직이거나 말하지 않는다. 등을 기대지 않으면 5~10㎜Hg, 다리를 꼬면 2~8㎜Hg, 커프와 심장의 높이가 다른 10~40mmHg까지 높게 측정될 수 있다. 측정 중 말을 하는 경우에도 혈압이 더 높게 나온다. 가급적 자주 집에서 혈압을 재고 날짜, 시간, 수축기 혈압, 확장기 혈압, 맥박 수를 기록해두면 혈압의 조절 여부, 치료 효과 여부를 직접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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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익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