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앞으로 500년 후에는!

2017-04-22 (토)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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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 청춘에 짓밟힌 애끓는 사랑 눈물을 흘리며 어디로 가나/ 한 많은 이 세상 냉정한 세상 동정심 없어서 나는 못 살겠네/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말고 한 오백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 강원도 민요로 알려져 많은 가수들이 애창하여 불린 ‘한 오백년’이다.

한 오백년 살자는데 웬 성화요. 글쎄 욕심도 많지, 어떻게 부부가 500년씩이나 살아갈 수 있겠나. 사랑이 넘치는데 정만 두고 떠나간 님, 가신님을 그리는 한 맺힌 민요다. 한 오백(500)년. 대나무의 매듭처럼 한 매듭을 짓고 넘어갈 수 있는 세월의 매듭일 수 있다. 이성계가 시조인 이씨조선의 500년(1392-1910)처럼.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인 1517년. 가톨릭 사제며 신학 교수였던 독일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종교개혁을 일으켰다. 그는 10월31일 비텐베르크 대학 성당의 정문에 95개 논제의 반박문을 게재했다. 이유 중 하나는 베드로대성당 신축비용 등을 확보하기 위해 로마가톨릭교황이 면죄부 발행을 남발했기 때문이다.


면죄부는, 산 사람만의 죄가 아니라 그의 부모나 친지의 영혼조차 면죄부를 산 돈이 금고에 떨어져 짤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연옥으로부터 튀어 나온다고, 면죄부 판매는 홍보됐다. 이에 루터는 참으로 회개하는 신자라면 면죄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용서를 받았다며 교황권에 정면 도전했다. 500년 전의 일이다.

죄를 면제해 준다는 면죄부(免罪符/Indulgence). 기발한 아이디어 아닌가. 루터는 파면됐고, 루터교(Lutheran Church)를 창설했다. 러시아 선교를 다녀온 목사가 있다. 그는 지난해 한국을 갔다 와 이런 설교를 했다. 가는 곳마다 돈과 물질이 교회를 좀먹고 판치고 있다고.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돈이 부패의 온상인 것 같다.
돈이 교회와 목사를 좌지우지하는 풍토가 한국교회에 만연해 있음을 그는 개탄하며 종교개혁은 지금도 유효함을 인정한다. 미국의 교회는 뭐가 좀 다를까. 어떤 목사는, 목사들이 교회에 파고든 금권과 결탁하여 맥을 못 추는 것이 현실이라며 개탄해 한다. 또 어느 신자는 목사가 돈 많은 교인만 찾아다닌다고 한숨짓는다.

교회의 세습 문제. 한국에서 보내져 오는 한인목사들의 설교방송. 이미 아버지에게 세습 받은 아들 목사들이 버젓이, 내노라 설교한다. 수만 명의 신자에 수백억을 웃도는 헌금. 세습 받은 아들목사들. 교회에 금수저들이다. 루터가 가톨릭교회 교황권의 부패가 극에 달하자 개혁을 일으킨 후 가톨릭에서 갈라져 나온 개신교들.

500년 동안 수 백, 수천의 개신교단(Protestant)들이 되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다. 개혁을 원했던 루터의 신학사상과 구호는 명료하다.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총!(sola gratia!), 오직 성서!(sola scriptura!)다. 하나님 중심 하에서 나온 이 원칙과 구호들은 그리스도(Jesus Christ)만이 이들을 연결해 주는 끈이 된다.

목사도 사람이기에 돈 없이는 살 수도 없고 선교도 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가 자신의 사리사욕(私利私慾)에 빠져 목회를 하거나 교회를 치리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면죄부를 팔아 대성당을 지으려 했던 가톨릭교황과 다를 바가 없다. 또 예수를 팔아 사욕에 써버리는 사이비종파들과 다를 게 없다.

루터가 살았던 시대는 중세였다. 중세기 유럽의 사회구조는 왕권이 교황권의 지시를 받던 시대였다. 그러기에 루터의 종교개혁, 즉 교황권에 대한 도전은 종교개혁이기에 앞서 사회개혁에 더 가깝다고 신학자들은 보며, 루터 개혁의 의미는 신학뿐만 아니라 사회학, 심리학, 철학, 역사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 파급됐다고 본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500년이 지나 지금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개혁은 정리되지 않고 계속 진행형이다. 오히려 교회의 부패, 성직자의 부패는 더 심해지고 있다. 순수와 정직이 설 자리를 잃고 술수와 모함만이 판치는 시대에 교회마저 썩어가고 있는 실상이다. 앞으로 500년 후에는 어떤 교회, 어떤 종교, 어떤 사회로 변해 있을까.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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