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P “무역협상 과정서 미측이 검토한 요구사항 리스트에 포함”
▶ 韓 ‘동맹 현대화’ 추구하되 中과 불필요한 갈등 피해야할 상황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왼쪽)과 라이언 도널드 유엔사·연합사·주한미군사 공보실장이 7일(한국시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2025년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 한미 공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한국의 명시적 동의를 원하는 정황이 미국 언론에 보도되면서 향후 한미정상회담 또는 그 이후 한미 안보협의 계기에 이 문제가 중요 의제로 부상할지 주목된다.
전략적 유연성은 한국군과의 공조 하에 대북 억제를 주목적으로 삼아온 주한미군의 활동 반경을 대중국 억제 등을 위해 확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8∼9월 중으로 예상되는 새 국방전략 발표를 앞두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를 추구할 것이라는 관측은 그간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킹슬리 윌슨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8일 한미간에 논의되고 있는 '동맹 현대화'가 "한반도와 그 너머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것도 결국 주한미군의 역할 또는 활동 반경의 확대를 상정한 발언으로 읽혔다.
이런 상황에서 워싱턴포스트(WP)는 9일 미국이 한미 무역협상 국면에서 한국에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공개적 동의 요구를 검토했던 정황을 보도했다.
WP는 한미 무역합의 관련 미국측 초기 초안에 "대북 억제를 계속하는 동시에 대중국 억제를 더 잘하기 위해 주한미군 태세의 유연성을 지지하는 정치적 성명을 한국이 발표할 것"이라는 내용이 한국에 요구할 사항의 하나로 적시돼 있다고 소개했다.
관세를 타국의 정치·경제·안보 관련 양보를 얻어내는 지렛대로 적극 활용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과의 협상에서 얻어낼 요구사항 목록을 범정부적으로 정리할 때 미 국방부나 국무부 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이 같은 요구를 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말 한미간에 관세율 인하를 포함한 무역합의가 나올 때까지 실제로 미측이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한국의 동의를 요구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한국의 명시적 동의를 얻어내는 방안이 미국 정부 내부에서 제기됐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문제가 향후 한미정상회담 등에서 구체적으로 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한미동맹을 중국 견제 쪽으로 보다 적극 활용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지가 분명한 이상, 전략적 유연성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미측은 현재 진행중인 전세계 미군 주둔에 대한 재평가 계기에 주한미군 감축 옵션을 꺼내들며 압박을 하려 할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이와 관련, 피트 헤그세스 현 국방장관의 수석 고문을 지낸 댄 콜드웰은 싱크탱크 '국방우선순위'의 제니퍼 캐버노 선임연구원과 작성해 지난달 공개한 보고서에서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주한미군 감축 문제를 연계하는 구상을 드러낸 바 있다.
콜드웰 등은 현재 약 2만8천500명 수준인 주한미군 중에서 지상 전투 병력 대부분과 2개 전투비행대대 등을 철수하고 약 1만명만 남겨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런 태세 재편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로 역내 전쟁이 발생할 경우 한국에 있는 미군 전력을 활용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을 거론했다.
한반도 외부의, 역내 다른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미국이 한국에 있는 기지를 제한없이 사용할 수 있는 접근권을 한국이 제공하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집권 1기때 검토했고, 작년 대선 과정에서 방위비 분담금(주한미군 주둔비용 중 한국의 부담액) 대폭 인상 필요성을 거론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그가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한국 정부의 동의와 방위비 분담금 증액 문제를 주한미군 감축 문제와 본격적으로 연계하려 할 가능성을 주시해야할 상황인 것이다.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이미 한국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요구에 따라 불거졌고, 한국 정부는 2006년 그에 대한 입장을 표한 바 있다.
당시 발표된 한미 공동성명은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와 동시에 공동성명은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주한미군을 필요에 따라 재배치하고, 역내외 비상시 투입할 기동군으로 활용하길 원하는 미측 요구에 일정부분 부응하는 동시에 원치 않는 분쟁에 연루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나름의 안전판도 마련한 셈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국방력을 포함한 국력, 역내 현상변경 시도 가능성 등이 그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진 지금 미국이 19년전의 공동성명 내용에 만족할지는 미지수다.
미국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한국의 보다 구체적인 지지 표명을 요구할 경우 한국은 대북 억지력 유지에 미칠 영향, 미국, 중국과의 양자관계 등을 두루 감안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대만해협 유사시 주한미군이 출동할 경우 한국이 중국의 공격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와, 대만해협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할 경우 역내 미군 전력의 분산을 틈타 북한이 대남 도발을 감행할 공산이 커진다는 또 다른 측면의 우려를 두루 감안해 관련 협상에 나서야 할 전망이다.
아울러 한미동맹의 현대화에 부합하는 주한미군의 활동 반경 확대가 불가피하다면 중국과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할 소지는 피할 수 있는 적절한 입장 표명의 '형식'과 '표현'을 찾는 일도 중요해질 전망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