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화법과 이미지, 그리고…

2017-04-07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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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 대선 관련뉴스를 보다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의 강연을 얼핏 들었다. 강하고 단호하게 문장 끝부분을 다소 비장하게 하는 화법(話法)에, 확 달라진 이미지에 ‘이래서 강철수라고 하는구나’ 했다.

18대 대선 후보였던 시절, 작고 가는 목소리에 경어체 말씨는 열정은 없으나 편안하게 들리던 목소리였다. 사람의 목소리가 연습에 의해 그렇게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 놀라웠다.

과거 박정희 정권 때 반공이나 계몽 웅변대회가 초•중•고등학교마다 정기적으로 열렸었다. 학급에서 목소리가 크거나 말을 잘하는 학생들이 교내 선발대회를 거쳐 구별 대회, 서울시 대회, 전국대회에 나갔다.


이 웅변 연설은 관중을 다소 거만하게 내려다보며 준비된 원고를 읽어 내려가다가 적당한 때, 주먹으로 단상에 놓인 책상을 꽝 치면서 ‘안그렇습니까 여러분!“ 하는 고정 스타일이 있었다. 연사가 흥분하면 강단 아래 모인 전교생들은 일제히 박수를 쳐대곤 했다.

안철수의 살짝 들어간 웅변조 화법이 현재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대권주자 4명의 화법과 이미지를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2012년 대선 후보시절보다는 많이 여유가 있어졌다. 착해보이나 어눌한 말투에 ‘고구마’라는 별명이 있으나 요즘은 강연 중 대중의 호응을 끌어낸다는 평을 듣고 있다. 단정한 블랙과 네이비 칼라 정장으로 지혜롭고 선한 이미지를 준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달라진 화법이 좋고 싫고로 갈린다. 흐트럼없이 단정한 정치인 머리, 토크콘서트 시절 가르마 탄 생머리에 대해 두 갈래 의견이 있는데 본인은 후자다. 네이비 칼라 양복에 화이트 와이셔츠, 붉은색 또는 블루톤 넥타이를 매고 있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는 경제학자 출신답게 대학교수 이미지다. 융통성, 유연성은 있어보이나 ‘배신의 정치’라는 표현이 영 떨어지지 않는다. 이미지 전문가들은 파스텔톤 셔츠, 남색•보라색 넥타이로 신사 이미지를 강조하면 젊은층 호응을 얻을 것이라는 견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는 독설화법으로 단기간에 자신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효과를 준다. 반말, 튀는 태도, 말바꿈 등이 전형적인 정치인 스타일이다. 붉은 넥타이를 자주 매는데 노이즈 마케팅에 강한 추진력을 보여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대선후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재외유권자들에게도 관심사다. 뉴욕한인들은 오는 4월25일부터 30일까지 6일간 치러지는 재외선거를 앞두고 누굴 찍을 것인지 고심 중이다. 대선후보들의 능력과 정책 비전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가장 먼저 보이는 외모와 패션, 표정과 화법, 태도가 1차적으로 표심을 결정하기도 한다.

후보들의 이미지를 좌우하는데 목소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약간 저음에 소리의 울림이 충분하여 신뢰감을 주면 좋은 목소리라 한다. 그런데 아무리 목소리가 좋아도 담긴 내용이 맹탕이거나 화려한 수사만 가득 찬 매끈한 말솜씨, 딱딱하게 경직되어 스트레스만 준다면 유권자는 금방 돌아선다. 짧고 쉽게 마음을 파고들 핵심 메시지가 정확하게 전달되어야 표심이 움직인다.


2010년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탄 영화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가 있다. 영국왕 조지 6세는 말더듬는 장애가 있었으나 언어치료사 라이오넬을 만나 마음의 안정을 찾으면서 2차세계대전 참전을 선포하는 라디오 방송연설을 성공시킨다.

“이 땅의 모든 국민여러분, 멀리 해외에서 듣고 계신 국민여러분 마음을 모아주십시오. 침착하면서 결연한 자세로 다함께 고난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하고 방송한 그는 독일군의 폭격에도 버킹엄 궁을 떠나지 않고 런던을 지켜 국민의 마음을 얻었다.

앞으로 대선주자들은 강연장, TV토론, 시장과 거리에서 수많은 유권자를 만날 것이다. 유권자의 마음을 얻으려면 메시지가 담긴 자신만의 화법과 이미지, 그리고 대선이후의 행동이 중요하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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