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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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시위 문화

2017-03-17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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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10일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사건 선고에서 전원일치로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지난 4개월간 전국 곳곳에서 1,700만명의 국민들이 혹한의 날씨에도 길거리에 나와 펼친 ‘박근혜 퇴진’ 범국민 촛불시위의 결과였다.

작년 8월31일에는 브라질 역사상 첫 여성대통령 지우마 호세프가 연방상원의원 투표로 탄핵되어 자리에서 물러났다. 경제적 적자를 숨기고자 브라질 회계장부를 조작했다는 의혹 등등으로 2016년 5월12일 직무정지를 당했고 연일 수백만 명의 시위대가 거리로 몰려나와 대통령 물러나라고 외쳤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에서는 매년 2월에 리우 카니발이 열려 세계적 축제로 치러진다. 그런데 이 호세프 탄핵을 위해, 마치 이 리우 카니발처럼 화려한 장식을 한 사람들이 삼바 리듬에 맞춰 시민들과 춤을 추면서 시위를 주도했다고 한다. 이 정도 되면 시위도 문화 축제의 한마당이 된다.


최근 가슴뭉클한 시위도 있었다. 동유럽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는 2월12일 시위에 참여한 약 6만명의 시민들이 스마트폰으로 대형 국기를 만드는 장면이 일제히 전세계 매스컴을 탔다.

루마니아의 국기는 파랑, 노랑, 빨강의 삼색기다. SNS를 통해 이 아이디어가 전파되자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색종이를 들고 색깔별로 구획이 나눠진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색종이에 불빛을 비춰 거대하고 장엄한 루마니아 국기를 만들었다.

이 반정부 시위는 지난 1월31일 총리가 교도소 공간이 부족하다며 부패범죄자 2,500명을 풀어주자는 행정명령을 내자 부패정부 물러나라며 시위를 벌였고 결국 2월5일 총리는 행정명령을 철회했다.

그러나 모든 평화적 시위가 성공한 것은 아니다.
2014년 9월 홍콩에서는 24개 대학교 학생들이 금융중심가 센트럴을 점거하면서 중국 정부의 개입 없는 행정장관 자유직선제를 요구했다. 경찰의 최루탄을 우산으로 막아내어 ‘우산혁명’으로 불려졌지만 10만여명의 시위대는 시위 74일만에 민주화 열망을 접어야 했다. 학생들은 ‘우리는 돌아올 것이다’는 말을 남겼는데 이들은 한국의 촛불시위에 영향을 받을까?

한국 최초로 국민이 독재정부에 맞선 대대적인 시위는 4.19혁명이었다. 전국적으로 일어난 시위는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이뤄냈지만 경찰과의 충돌로 185명 사망, 1.5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1970~1980년대 한국의 대학생들은 시위를 밥 먹듯 했다. 시위대는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교문을 나서려했고 이를 막으려는 경찰과 충돌했다. 돌멩이, 각목, 화염병, 진압봉, 최루탄 발사기까지 결국은 양쪽에 부상자가 속출했고 행인들도 자욱한 최루가스에 재채기와 눈물을 줄줄 흘려야 했다. 최루가스는 더 큰 증오와 투쟁정신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한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촛불과 스마트폰, LED 막대기가 등장하면서 밝고 평화적 시위로 점차 변해갔다. 이번에 대통령 파면을 이끌어낸 촛불집회는 풍자와 해학, 잔치마당으로 완전히 달라진 시위 문화를 보여주었다. 차벽과 경찰들 방패에 꽃 그림이 그려진 스티커를 붙이는 시민의 모습은 예뻤다.

화염병과 피켓 대신 핸드폰과 촛불을 들고 구호 대신 초청가수와 함께 노래하며 치러진 시위는 집회가 끝난 후 앞장서서 쓰레기를 치우는 모습에서 완성되었다.간디가 인도국민들과 함께 영국의 식민지배에 저항하고 독립을 얻기 위해서, 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인종차별에 맞서 선택한 비폭력 불복종 운동, 어떠한 폭력도 사용하지 않고,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고 조용히 무혈혁명을, 뜻을 이룬 것이다.

사방팔방이 스마트폰 천지인 시대에 폭력과 욕설은 실시간으로 생중계되고 이런 방법은 오히려 자신의 의견을 묻히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록 시위 형태는 달라져도 국민의 뜻은 언제나 민주주의 수호이다.

세계 각국에서 평화적인 시위가 유행이 된 듯 한데 여전히 북한은 김정은의 공포정치로 정적 숙청 및 김정남 독극물 살해까지$ 아직도 한반도 평화는 영하의 날씨로 꽁꽁 얼어있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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