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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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다 원칙

2017-03-06 (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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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네스토 미란다. 그는 1941년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태어났다. 어려선 어머니를 잃고 부랑자로 자랐다. 학창시절엔 이미 강도혐의 전과자. 강간 미수와 폭행 유죄판결도 받았다. 소년원 감호 속에 살파시피 한 것이다. 그 후에도 무장 강도와 성범죄 혐의로 구속됐다.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 듯 하던 상습전과자였던 셈이다.

1963년. 미란다 나이 22세. 18세 소녀를 강간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피해 소녀는 완강히 저항했지만 성폭행 당했다고. 이틀 동안 사막을 끌려 다니며 곤욕을 치렀다고도 했다. 가해자로는 미란다를 지목했다. 경찰은 즉시 그를 체포했다. 하지만 수갑을 차고 경찰서로 끌러온 미란다는 범행을 부인했다.

경찰은 더욱 강도 높은 추궁을 벌였다. 미란다는 경찰들로부터 묵비권 등에 대한 권리를 고지 받지 않은 상태에서 피의자 조사를 받았다. 그 후 납치와 강간에 대해 자백했다. 자필 진술서에 범행을 시인했다. 이로써 미란다는 1심법원으로부터 납치와 강간죄에 대해 유죄가 인정돼 각각 징역 20년과 30년을 선고 받았다. 상소법원도 원심을 지지하는 판결을 했다.


그러나 이 판결은 연방대법원에서 파기됐다. 대법원 판사들은 5대4로 미란다의 무죄를 선고했다. ‘심문 중 변호사를 입회할 수 있는 권리를 고지 받지 못했고, 어떠한 경우에서든 유효하게 보호받아야 하는 진술거부권이 보장되지 않았음이 명백하다. 이러한 피고인의 권리를 고지하지 않는 경우에는 증거로서 허용될 수 없다’는 이유다. 이렇게 1966년 ‘미란다 원칙’이 생겨졌다.

미란다는 무죄를 인정받아 풀려났다, 그렇지만 좋아할 일도 아니었다. 그는 동거녀의 새로운 증언으로 다시 체포됐다. 조사를 받고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더 큰 횡액은 출소 후에 기다리고 있었다. 술집에서 시비가 붙어 다른 남자의 칼에 목이 찔려 숨졌다. 물론 미란다를 살해한 남자가 체포될 때도 경찰들은 ‘미란다 원칙’을 고지했다고 한다.

미란다 원칙은 당시 피해자보다 범죄자의 권리를 더 존중하고 있다는 이유로 많은 파문과 비판을 초래했다. 하지만 형사소송절차에 있어 피의자와 피고인의 인권을 신장시킨 획기적 판결로 평가됐다. 미란다 원칙의 고지 없이 체포된 이에게 무죄가 선고되는 판례는 그들도 한 인간으로의 권리를 보장받을 때 일반 시민의 권리 또한 소중하게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이 한인사회에 충격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대적인 불법체류자 단속의 불똥이 합법이민자들에게까지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인이민변호사들이 한인이민자보호에 발 벗고 나선 것이다.

행정명령이 한인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향후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무료 이민 상담과 핫라인도 설치했다. 그래도 한인이민자 모두는 신분에 상관없이 스스로의 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기본권을 이해하고, 그 기본권을 바탕으로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이민단속 대비를 위해 뉴욕시신분증(IDNYC) 등 유효한 신분증을 항상 소지하고 다녀야 한다. 자신이 체포됐을 때를 대비해 친구나 가족, 변호사의 연락처를 항상 소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경찰이나 이민단속국 요원들과 만나게 될 때 자신이 가진 권리에 대해 인지하고 대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묵비권 권리 ▶이민신분을 밝히지 않아도 되고 ▶영장을 제시하지 않으면 현관문을 열지 않아도 되며 ▶변호사 상담권리와 ▶이해하지 못하는 서류에는 서명하지 않는 것 등을 말함이다.

미란다원칙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변호사를 부를 권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지금처럼 반 이민 광풍이 몰아칠 때는 한인 모두가 꼭 숙지해야 할 원칙인 셈이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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