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말할 수 있는 용기

2017-02-03 (금) 민병임 논설위원
크게 작게
지난 3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법무부 장관 권한대행을 맡고 있던 샐리 예이츠 법무차관이 물러났다. 이슬람권 7개국 국민들의 입국을 90일 동안 금지시킨 반이민 행정명령 이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어 시리아, 이라크, 이란 등 중동 아프리카 7개국 무슬림 국가 국민들은 비자발급 및 입국 금지로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사람을 출신국가나 종교 신념에 따라 차별하는 반인권적 행정명령에 비난하는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뉴욕, 캘리포니아 등 16개주 법무장관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비미국적이고 비헌법적이라고 지적했고 이와관련 개인과 단체, 지방정부의 소송도 줄을 잇고 있다.

예이츠는 “정의를 추구하는 법무부의 책임과 일치한다는 확신도, 합법적인 지에 대한 확신도 없다”고 했다.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말한 그녀가 참으로 당당하다.


애틀랜타 검찰총장을 지낸 예이츠는 27년간 검찰청과 법무부에서 일한 여성으로 2년 전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대통령의 행동이 불법이라고 간주한다면 이에 맞설 수 있는가하는 질문을 받자 ‘법무장관과 차관은 헌법과 법률을 지킬 의무가 있다. 그리고 독립적으로 판단한 법률적 조언을 대통령에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답했었다.

오늘날, 혼란과 혼돈 속에 빠져든 한국을 보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저 부러운 일이다.
요즘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의 현모양처 허상을 깨는 드라마가 나오고 수십종의 서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신사임당은 그동안 가부장적 가치관에 기초한 현모양처의 상징이었다. 과연 신사임당은 현모양처인가? 유교국가인 조선시대에 가정주부가 아이를 일곱 명이나 낳아 키우면서 언제 그림을 그리고 언제 시를 쓸 시간이 있었는가?

아버지 신명화가 딸의 재능을 키워줄 무난한 가문과 성격의 사윗감을 골랐다지만 정작 남편 이원수와의 사이는 멀었으니 양처(良妻)는 아닌 듯 하고 성리학의 대가 율곡 이이, 문인 이우, 화가 이매창 등 4남3녀의 현모(賢母)는 되었으나 병으로 48세에 사망, 자식들 곁에 오래 있지는 않았다.

결혼 후 친정집인 강릉 오죽헌에 계속 살다가 나중에야 서울과 파주 시댁에 갔고 수시로 친정집을 오가며 그림 그리고 글 쓰는 시간을 내었을 것이다. 신사임당은 산수도, 초충도, 연로도 등 그림, 서예, 자수 작품을 다수 남겼다. 신사임당에게는 현모양처보다는 그림, 서예, 시 등 자기예술을 완성한 예술가로서 강한 자의식, 주체성이 먼저 보인다.

이제 막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는 이 신사임당의 과거와 현재의 대학 시간강사 서지윤(이영애 분)이 시간여행을 하는 드라마다. 서지윤은 500년만에 발견된 안견의 금강산도를 국보로 지정하고자 하는 공개학술발표회장에서 “진품 맞느냐? 학자의 양심을 걸고 대답하기 바란다”는 질문에 “잘 모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한다. 이 한마디로 인해 그녀는 대학교수 정규임용을 눈앞에 두고 해온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대장금’ 이후 13년만에 복귀한 탤런트 이영애가 등장하는 이 드라마가 앞으로 제2의 대장금이 될 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신사임당을 유교의 틀에 가둬두지 않고 결혼전 사랑하는 이가 있고 예술적 자유 영혼을 지닌 독립적인 여성으로 부각시킨 것은 참신하다.
디즈니의 뮤지컬 애니메이션 여주인공도 점차 강해지고 있다.

착한 여자에 대한 사회적 강압이 신데렐라와 백설공주를 만들어냈지만 90년대후반부터 백설공주의 하얀 피부는 까무잡잡한 건강미 넘치는 흑설공주로, 신데렐라 비틀기로 변모했다. 온갖 고초를 견디며 왕자를 기다리던 여린 심성만 지닌 여성은 더 이상 없다.
포카혼타스-뮬란-엘사-모아나까지 이제 여자들은 능력을 갖추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 당차게 앞장서 간다. ‘모아나’에는 아예 남자 주인공이 없다. 남태평양 모투누이 섬에 사는 16세 소녀 모아나는 섬의 저주를 풀기위해 홀로 노를 저어 먼 바다로 나가며 고난과 모험 속에 점점 강해져간다.

이렇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이는 불의를 보고 침묵하지 않는다. 옳은 것은옳은 것이고 틀린 것은 틀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가상한 현실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