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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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 부꾸미

2017-02-03 (금) 고명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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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학창시절에는 누구나 손꼽아 기다리던 겨울방학이 있었다. 한 학년을 마무리하고 상급반이 된다는 설렘보다는 추운 날씨에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즐거움이 더욱 컸던 것 같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신촌의 대학가를 순회하던 버스정류장 종점에 위치하고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 갈 때는 언제나 자리에 앉아서 편하게 창 밖에 풍경도 감상할 수 있었다 . 전철도 없고 자가용도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서 그랬는지 학교 가까운 거리에 여러 선생님 댁이 있었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는 가정선생님이 사셨고 바람 부는 날이면 버버리코트를 펄럭이며 성큼성큼 걸어서 등교하시던 장발머리 음악선생님도 그 동네에 사셨다 음악선생님은 같은 교정에서 공부하던 고등학교 선배 언니들에게 인기가 최고였다 .

그러나 철없고 순진한 우리는 이제 막 교사로 부임 받은 대학생 언니 같이 젊은 가정선생님을 더 좋아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좋아하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첫 수업이 있던 날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된다. 교과서를 반으로 접은 손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고 태연한 척 하셨지만 수업하는 내내 얇은 입술의 경련도 촉이 예리한 우리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첫 수업은 안타깝게 서로 탐색하듯이 두근거림으로 끝이 났고 검정색 긴 출석부를 옆에 끼고 교실문을 나서는 선생님이 끌고 가는 슬리퍼 소리마저도 교실 안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우리 반 끝 번호 학생보다 작은 체구에 가녀린 모습의 선생님을 우리가 지켜드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던 몇 명이 두 팔을 걷고 나섰다 중학교 2학년 풋내기들의 선생님 가정방문기는 그런 핑계로 시작되었고 어느덧 겨울방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날도 마지막 시간표에 가정과목이 있었지만 다른 과목으로 대체수업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이 많이 아프셔서 결근을 하셨고 교감선생님이 대신 우리를 지켜주셨다.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멤버들은 선생님 댁으로 내달렸다 지난밤에 급채를 하셔서 하룻밤 병원신세를 졌다고 많이 미안해하셨다.

다행히 앉은뱅이 책상에서 무엇인가 하시던 선생님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고, 전기프라이팬을 플러그에 꽂으시고 쫄깃한 찹쌀 부꾸미를 구워주셨다 . 노릇하게 구워지면 참새마냥 하나씩 번갈아 입에 넣고 따뜻한 아랫목에서 재잘거리며 먹었던 아이스크림 보다 달콤했던 그 맛을 평생토록 잊을 수 있을까.

긴 세월이 지나고 찹쌀가루보다 더 흰 눈이 내리는 겨울이 그 날처럼 하얗게 밀려 온다
엄마한테 가기 위해서 색다르고 부드러운 음식을 찾던 중 찹쌀 부꾸미가 눈에 들어왔다. 판매용이라 그런지 여러 가지 색깔로 곱게 물들여 놓았고 유별나게 크게 만들어 포장되어 있다. 아버지의 교편생활을 끝으로 롤러코스트 같은 살림을 꾸려 내느라 엄마는 늘 분주했다. 쌀독이 바닥을 드러내는 날이면 밀가루로 수제비를 끓였다 도시락을 싸지 않아도 되는 겨울방학이 되면 더 자주 3등급 누런 수제비를 띄웠다 .

석유곤로 빡빡한 심지에 성냥불을 넣으면 메케한 냄새가 파란 불 꽃이 되어 가난한 마음이 먼저 까맣게 타 들어 갔다. 흑설탕을 넣고 밀가루 송편을 만들어 수제비통에 반항하던 철없던 시절이 푹 꺼져버린 엄마의 눈 속에서 아득하게 되살아온다.

음식 갖고 장난치면 복이 달아 난다고 탄식이 섞인 책망도 할 일 없는데 인생의 노을이 벌써 다가 와 있다. 수제비를 반죽을 하던 퉁퉁했던 손에 들린 찹쌀 부꾸미를 보며 힘없는 입가에 퍼질 듯 말듯한 미소가 잠시 머물다 우물거린다. “ 쫄깃하고 참 맛있다.”옛날에는 부잣집에서나 먹던 귀한 음식이었는데 하시며 좋아진 세상에 옛일을 떠 넘기신다.

선생님은 고등학교 때부터 서울에서 유학생으로 자취를 하셨고 신촌에 명문 여자대학을 졸업하시고 우리 곁에 잠시 머물다 위암으로 멀리 떠나 가셨다. 선생님의 양식인 찹쌀 부꾸미는 우리의 꿈과 미래가 되었고 그 때 먹었던 수제비는 나를 철들게 했다. 베풀어 주시며 환하게 웃으시던 그 모습이 그리운 날 엄마 손에서 부꾸미가 행복하다.

<고명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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