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의 장벽

2017-02-01 (수)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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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세기 중국의 진시황은 훈족의 잦은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다. 이 훈족이 유럽으로 점차 이동하면서 유럽을 조금씩 잠식하기 시작했다.

AD406년 훈족의 침입으로 로마가 쇠퇴하자 로마는 훈족에게 조공을 바치고 귀족들은 볼모로 잡혀갔다. 당시 로마 장군의 아들 아이티오스도 잡혀갔는데 훈족의 배려로 노예와 병사들과 달리 훈족의 귀족들과 같이 지냈다.

이때 아이티오스는 훈족의 전쟁기술과 각종 탁월한 기법을 배웠다. 이는 당시 훈족이 지닌 최대의 기법이었다. 그후 아이티오스는 로마로 귀환해 훈족과 동맹을 맺고 지금의 헝가리 땅을 내주었다.


당시 아틸라 왕 지배하의 훈족은 60개 성을 함락하면서 동로마를 거의 점령하다시피 하였다. 이로 인해 451년 지금의 프랑스에서 서로마에 있던 아이티오스와 아틸라 간에, 즉 로마와 훈족 사이에 피 터지는 전투가 벌어졌다.

아이티오스는 훈족의 막강함에 위기감을 느꼈지만 군사력이 미약해 특별한 전법을 생각했다. 훈족의 전법을 잘 알고 있던 그는 로마를 구해달라며 당시 적대관계의 소국들에게 병사들을 보냈다.

그의 청을 받아들인 소국들의 도움으로 로마는 훈족을 퇴치할 수 있었다. 이 전쟁이 고대역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살롱전투’였다. 속국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로마는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취임직후 도널드 트럼프의 속전속결식 강경정책을 보면서 떠올려본 역사이다. 트럼프가 지금처럼 반 이민정책으로 “타협은 없다”며 강경모드로 계속 나간다면 국내는 물론, 세계 많은 나라들로부터 극심한 반감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트럼프의 행보가 당장은 자국을 위한 정책이라고 하지만 앞날을 내다볼 때 과연 그것이 정말 미국을 위한 것일까. 그의 반 이민정책에 영국과 독일, 캐나다는 물론, 이란 등 중동국가들과 심지어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그의 즉각적인 행정명령 서명에 반발하는 시위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의 뿌리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정책에 대한 반발이다.

중국은 지금 세계 상선이 드나드는 요충지 남중국해에 ‘인공섬’ 건설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일본과 해오던 훈련에 인도까지 끌어들여 3개국 연합훈련을 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을 압박하는 것이라며 어떠한 것에도 대처할 능력이 있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다. 최악의 경우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미로 보여진다. 이처럼 필요시에 다른 나라를 끝어들일 것이라면 왜 트럼프는 구태여 멕시코국경에 장벽을 치겠다고 야단인가.

지금 멕시코는 이에 대해 강경 대처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이는 벌써부터 멕시코의 반감을 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처럼 반감을 사게 되면 막상 미국에 위기가 닥쳤을 때 멕시코 등으로부터 도움을 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제까지 미국은 높은 장벽으로 고립된 나라가 아니라 세계 수많은 나라에서 이민온 200여개 민족이 다 같이 어우러져 서로의 문화와 종교, 피부색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발전해온 나라이다.

한마디로 미국 하면 ‘샐러드 보울(salad bowl)’ ‘다양성(diversity)‘을 떠올리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미국은 한 사람이 열 가지 일을 하는 나라가 아니고 다수가 각자 지닌 특성을 살려 하나의 일을 추진하는 나라이다. 즉 혼자서 열 가지를 막무가내 식으로 밀어붙이는 트럼프 스타일이 아니라 장관과 상하 양원의원 등 각계의 의견이 합쳐진 힘을 통해 이루어지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고 이것이 미국의 저력이며 위대한 가치이다.

트럼프가 진정 미국을 위한다면 적대국의 도움으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로마의 아이티오스를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미국을 위한 것이고 미국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것인지 한번쯤 곱씹어 보았으면 한다.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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