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생은 미완성

2016-12-07 (수)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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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마지막 죽을 때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아폴론의 아들로 의술의 신인 “아크레피우스에게 내 이름으로 닭 한 마리를 바쳐주게.” 아무리 위대한 현인이라도 그가 평소 하고 싶었던 것을 하지 못한 것을 돌아보며 마지막 순간에나마 그 일을 하려고 했던 것을 한마디로 보여주는 말이다.

소크라테스의 부인 크산테페는 평소 소크라테스에게 못된 짓을 많이 해 악처로 소문이 나 있다. 소크라테스가 마음에 안들면 그에게 구정물을 퍼붓는 가하면, 언젠가는 한 여름철 남편의 옷을 밖으로 내던져버렸는데, 그 때 소크라테스의 친구가 방문해보니 소크라테스는 가죽 옷을 입고 있었다. 그처럼 소크라테스는 부인의 냉대를 받고도 참고 또 참아냈다.

그만큼 냉혹한 크산테페도 소크라테스가 마지막 죽을 때에는 그를 붙잡고 대성통곡하며 슬피 울었다고 한다. 아무리 악처였어도 남편이 죽는 순간에는 후회와 연민으로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우리 보통 인간의 모습이다. 하물며 그 위대한 현인도 마지막에 가서는 후회하는 일이 있는데, 우리 같이 평범한 인간은 얼마나 후회투성이겠는가.


하루하루 살다보니 어느덧 12월, 한 해 끝자락에 와 있다. 이때가 되면 너 나 없이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며 후회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왜 좀 더 열심히 살지 못했을까. 왜 좀 더 지혜롭지 못했을까. 왜 좀 더 넓은 마음을 가지지 못했을까 등등.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은 다 지나간 과거일 뿐,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것은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우리 앞에 펼쳐질 또 다른 내일의 삶이다.

유대 랍비들이 성경을 해석한 ‘미드라쉬’에 있는 ‘다윗 왕의 반지’는 아무리 보아도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칠 수 없는 글귀다. 다윗 왕이 자신이 교만하지 않고 절망에 빠지고 시련에 처했을 때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를 반지에 새기도록 세공사에게 구했다. 그 글귀를 세공사가 다윗의 아들 지혜의 왕 솔로몬에게 물어서 새긴 것이 우리가 잘 아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다.

지금 우리는 돈이나 명예, 권력을 가졌다고 우쭐해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 너무 힘들고 괴롭다 하여 슬퍼하거나 절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다 지나갈 것이다. 이를 붙들고 과거에 매여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일전에 어느 책에서 인간에게 있는 네 종류의 생을 본 적이 있다. 첫째는 제 고집대로 살다가 실패하는 인생, 두 번째는 때를 놓치고 마는 인생, 세 번째는 후회하는 인생, 네 번째는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만족하며 사는 인생이다. 우리는 늘 한해 마무리 시점에 와서는 대부분 “좀 더 많이 베풀 걸, 좀 더 즐기며 살 걸, 좀 더 참을 것을 하면서 후회하는 인생이 되곤 한다.

우리는 어느 쪽의 인생을 살고 있는가. 지금은 한해의 마지막, 인생의 마무리 시점에서 자신을 성찰하며 반성할 때이다. 12월을 헛되이 보낼 것이 아니라 고쳐야 할 점이 있으면 고쳐야 된다는 생각으로 12월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아무도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는 없다. 그 물은 이미 흘러가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강물 못지않게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12월, 인생 막바지에 와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나가는 자리도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다. 그래서 세월은 유수와 같다 했던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노년에 와서도 젊었을 때와 똑같은 사람은 없다. 우리 육체는 강물처럼 움직인다.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은 모두 시간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물론, 나 자신도 변하고 있다.”고 하였다.

어차피 인생은 미완성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충 살 일은 아니다. 기왕이면 열심히 해서 후회 없는 삶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 아직은 후회라는 것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열려 있다. 더 나은 생을 위해 당신은 이 남은 시간,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답해야 할 소중한 명제이다.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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