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커네티컷/ 칼럼: 시래기

2016-12-02 (금) 고명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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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을 나간 길에 마켓에서 무청을 몇 단 들고 왔다. 살짝 데쳐서 베란다 귀퉁이에 빨래처럼 가지런히 널었다. 바람이 좋은 양지에서 밤과 낯을 즐기더니, 고슬고슬 푸른 옷을 벗고 원숙한 가을 색으로 변신을 했다.

알맞게 습기를 품어 동그랗게 휘어지는 시래기를 한 번씩 꺼내 쓰기 알맞게 냉동실에 잘 저장해 두었다. 이맘때쯤이면 큼지막한 뚝배기에 숙성된 된장을 넣고 조물조물 재워 두었다 다른 양념이 없어도 굵은 멸치한줌이면 짭쪼름하게 미각을 돋구던 엄마가 끓이던 된장찌개가 그리워진다.

김장끝물에 집집마다 새끼줄에 엮어 처마 밑에 줄줄이 걸어 두고 눈꽃이 흩날리던 날이면 부뚜막 가마솥에서 한가히 몸을 풀던 그 시래기와는 견줄 수 없지마는 겨울이 허전하게 찾아 들면 조촐한 식탁위에 가끔은 주인공이 되고 타국의 외로운 마음쯤은 거뜬하게 덜어 주는 속 풀이 귀한 음식이 아니던가.


이 계절이 좋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신토불이 고향의 먹거리가 어느 계절보다 풍성하기 때문이다. 미끈하게 잘생긴 고구마, 토실토실한 햇밤, 발그레 웃고 있는 단감과 감기예방에 쓸 말캉말캉 잘 건조된 대추 등….

장바구니에 오래된 친구처럼 가득 담고 아담한 장막으로 돌아오는 길이 알 수 없는 넉넉한 가슴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마음속 한 켠에 큰 파도가 넘실거리고 있으니 요즈음 끈임 없이 시끄러운 한치 앞이 안 보이는 고국의 앞날이다. 스마트폰에 저장해 둔 시래기 말리는 사진을 친구들에게 올렸더니 의외로 댓글들이 많이 올라온다. 그 중에 “나도 머리 땋고 싶다”라는 댓글을 읽자마자 문득 그 해 여름이 떠올랐다.

양 갈래 머리를 땋아 하얀 교복 어깨 위에 가지런히 올리고 웃음소리마저 정숙했던 새침떼기 중학생이 무엇에 이끌려 광화문광장으로 내 달렸었다. 찌는 듯한 더위와 수많은 인파에 뒤엉켜 발끝을 세우고 목을 길게 빼보아도 키가 큰 어른들 무리에 끼여 제대로 볼 수 없었던 하얀 국화꽃 긴 행렬, 슬픔에 잠기고 목 놓아 울면서 국모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하겠다고 온 나라가 통곡했었다.

하얀 교복은 얼룩 때로 물들고 가지런히 땋았던 머리도 헝클어져 슬픔만큼 참담한 행색으로 돌아오던 어스름 골목길에는 드물게 세워진 가로등 등불도 가물거리고 있었다.
시대를 뛰어 넘은 지금 그 광장에서 또 다른 행렬이 촛불을 밝히고 슬픔대신 미움과 분노의 함성이 탄식하고 있다.

하야, 퇴진, 탄핵 등 평소에 생소했던 말들이 연일 뉴스에 도배되고, 온 나라가 들썩거리니 조국의 안위마저 걱정이 된다. 그러나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날마다 희망을 말하고 정의를 부르짖는 기도가 있기에 소망의 내일을 기다려 본다.

화해와 용서로 감격하는 광장을 꿈꾸는 심장은 아직 잠들지 않았다. 어느새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이 섭리처럼 펼쳐있다. 크리스마스트리에 사랑의 불빛이 높이 밝혀지는 축복의 계절이다. 이 계절이 다 가기 전에 마음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굳게 닫힌 빗장도 풀어 져서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하나 된 조국의 평화의 종소리가 널리 울려 퍼지길 기도한다.

마지막 잎 새가 허공에 몸을 날리고, 추위에 떨며 무청이 시래기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내 안에 메마른 초장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리고 조국의 상황을 빗대어 시 한편을 엮었다.

죽어야 살리/ 네 뜻은 아니지만/ 청청한 고집/ 꺾지 않으면/ 밖에 내 버려져 밟힐 뿐이니/ 뻣뻣한 자존심/ 외줄에 걸고/ 때리는 바람으로/ 오욕과 수치를 떨쳐 내고/몸에 남은 겉치레/ 다/ 삭아 질 때/ 비로소/ 새로운 이름으로 거듭나는/ 오래 두고 쓰임 받는/ 만인의 사랑이 되리.

<고명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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