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의 포코노 고원(高原)은 푸르고 따뜻했다. 하이웨이 80번을 나와 로컬 447번으로 갈아 탄 후, 북으로 방향을 바꾸어 올라갔다. 라면줄기처럼 굽어진 길이 직선으로 바뀌면서 문득 숲이 장관이다. 숲 사열(査閱)을 하는 것 같았다.
가을꽃으로 가득한 화원을 지나자 왼쪽으로 잘 닦은 외딴 길이 시선을 끌었다. 저 안에 무엇이 있을 것만 같았다.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 빗장을 밀치고 들어섰다. 벽돌 색 목조 건물 한 채가 앞에 반갑게 서 있다. 수양관이다. 수양관 왼쪽으로 돌아 소나무 숲을 건너니 소담한 호수하나가 누워있다. 스프루스 호수다. 호수는 조용했다. 산도 조용했다. 산 사람까지 조용하고 순했다.
한 눈에 들어오는 호수의 둘레는 빽빽한 숲으로 막혀 있었다. 숲 안쪽으로는 소나무와 삼나무가 많았고 바깥쪽으로는 주로 선연리초, 비수리 종류의 잡초와 붉은 동자꽃, 제비동자꽃이 번갈아 가며 줄지어 있었다. 오른쪽으로 솟은 언덕 위로는 한 사람 정도 품을 수 있는 작은 오솔길이 열려 있었다. 오솔길은 작은 시냇물처럼 호젓이 흐르다가 산속으로 빨려 들어갔는데, 홀연히 그 자취를 감추어버린 까닭에 신비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산 속으로 빨려들어 간 긴 오솔길 끝자락에는 거짓말처럼 초록빛 시냇물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그 방향은 왼쪽이었고 물은 얼음처럼 찼다. 오솔길 아래에서 바라 본 스프루스 호수는 왼쪽으론 닫혀있고 오른쪽으로 열린 정방형 형태이지만, 언덕에 올라서서 호수를 내려다보니 오른쪽이 닫혀있고 왼쪽이 환하게 열려 있어서, 우리가 잠간 손을 담구었던 시냇물은 산마을 정중앙을 관통하는 관개수로처럼 시원하게 보였다.
호수를 향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흐르는 시냇물은 의외로 조용했다. 갈색 산도 과묵하여 아무 말이 없었다. 산 어느 틈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시냇물이 시원(始原)한 것일까, 궁금했지만 산은 끝까지 그 비밀을 말해주지 않았다. 궁금한 우리는 산을 오르기로 했다. 정숙(靜淑)한 산과 숲 앞에서 발자국 소리와 숨소리도 내지 않고 걸었다. 그렇게 침묵하며 산을 오르는데 갑자기 전면에 넓은 평원이 열렸다. 하얀 바위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잠들어 있었다.
모두 바위위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때 차가운 산바람이 우리의 몸을 세차게 맴돌았지만, 바위 내면에서 흘러나온 온기가 우리의 몸을 덥혀 주었으므로 우리는 호수와 산, 산마을 사람들이 따뜻한 것은 바위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과 바위는 금세 하나가 되었다. 그 순간, 바위 위에서 흐느끼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억제하듯 흐느끼는 사람의 숨소리도 바위의 속살처럼 따뜻했는데, 흐느끼는 사람의 숨소리가 더 뜨거워진 까닭에 바위도 점점 더워져 갔다.
스프루스 호수를 내려다보면서 우리는 바위와 함께 오래 있었다. 바람이 고마웠다. 우리가 바위와 함께 있는 동안 호수 가에 핀 동자꽃, 제비동자꽃 향기를 실어다 주었다. 바람에 실려 온 향은 산 속에 있는 모든 사소한 것들에게까지 따뜻한 마음을 열어주었다.
오후 4시가 지났을 뿐인데 산의 지척이 벌써 희미하다. 하루의 빛은 어두움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고, 어두움은 작은 틈을 열어 빛의 선물을 서서히 수용하고 있다. 산 사람들이 붉은 물결이 춤추는 호수를 바라보면서 귀가하고 있다. 밥과 외투가 없이도 호수가 있는 산속에서 우리는 배부르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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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