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 남자 ‘벤’의 일생

2016-11-26 (토) 장지윤 전직 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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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저지 자문위원 글마당

‘벤’은 이웃에 사는 60대 초반의 남자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지금까지 40여 년간 같은 제약회사에서 약품관리 보관인으로 평생을 일해 왔다. 그의 부모는 노르웨이에서 이민 와 건축업으로 성공하여 이곳 서북부 뉴저지 지대에서 자리잡고 5남매를 길렀다. 그 외에도 흑인 남매를 입양해 모두 7남매 중 벤은 세 번째 자식, 둘째 아들이었다. 누이들과 형은 대학을 갔으나 벤은 성적이 모자라 대학을 포기하고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스위스 제약회사에 취직해 그후 지금까지 만족하며 일해 왔다.

은퇴 후, 뉴저지 써쎅스(Sussex) 카운티로 필자가 이사왔을 때, 이웃에 살던 벤은 나를 친절히 대해주며 자기 집의 연장과 집일에 필요한 도구들을 모두 쓰게 해줬다. 그는 자주 자기 연인 리나와 나를 방문했다. 아름답고 착한 사람으로 보이는 리나는 키가 크고 풍성한 인상의 여인으로 모든 사람들이 두 번씩 쳐다보는 미인이었다. 그러던 하루, 마당에서 일하던 나에게 벤은 조용히 대화하고 싶다고 했다. 맥주 냄새가 좀 풍겨 다소 불쾌했으나 그의 얘기를 들어 주기로 했다.

벤이 고교 졸업반 때, 이 지역의 넓은 호수의 수영장에서 생명 구조원으로 일했을 때 그는 13세의 중학생인 나이보다 조숙한 ‘리나’를 처음 만났다. 나이 차이가 많았으나 이들은 약 1-2년 교제한 후 헤어졌다. 그 후 벤은 늘 리나 와의 정을 가슴에 품고 살다가 20대에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두 아이를 키웠다. 그래도 리나에 대한 그의 연심은 변하지 않았다.


헌데 10 여년이 지난 후, 벤은 리나를 자기 직장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리나는 벤의 상관의 비서로 고용되었던 것이다. 재회한 이 둘은 점심때마다 만나 친구같이 지내다가 어느 날 그 사이가 연인의 사이로 변하였다. 머지않아 벤은 자기 처와 이혼했다. 그러나 리나는 남편과의 사이를 원만하게 지속하여 어린 딸을 키우는 한편 벤과의 밀회를 계속했다.

벤은 리나의 외딸 수지를 자기 자식처럼 애지중지하여, 수지는 벤을 ‘벤 삼촌(Uncle Ben)’ 이라 불렀다. 리나의 남편은 돈 잘 버는 세일즈맨으로 출장 가는 일이 많아, 리나는 벤의 집을 자주 찾았다. 이 불륜의 관계는 오래 지속되어 벤은 심적인 갈등과 죄의식으로 번민하게 되었다. 커가는 아들 둘은 아버지 벤을 배척했고 벤은 알코올 중독자 비슷이 되어, 휴가를 얻어 요양소를 들락거렸다. 그러나 그는 하루도 직장에 빠지는 법이 없었다. 자기 사랑의 생명줄이 거기 있었으니까!

이 모든 얘기를 내게 털어놓은 벤의 눈에서는 주먹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죄가 많은 사람이다. 거짓을 살고 있다. 비밀을 껴안고 사는 데 이제 진력이 났다. 그러나 나는 리나 없는 세상은 살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이 근로자 타입의 건장한 모범 시민의 비밀을 듣고 너무도 마음이 아프고 가엾은 생각에 함께 울었다. “이런 나를 아직도 친구로 대해 주겠소?” 하고 물었다. “친구 뿐 아니라 누나가 되어 주지요” 라고 했다.

그 얼마 후 펜실바니아에 사는 벤의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벤이 급성 간염 진단으로 즉시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데,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자기가 오기 전에 벤을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벤은 그 후 수차 병원과 집을 오갔으나 그의 연인 리나는 남편과 딸의 일에 매달려 벤을 찾지 못했다. 홀로 집에서 요양하던 하루아침, 벤은 잠에서 영원히 깨나지 않았다.

그가 떠나기 며칠 전, 벤은 이런 말들을 남겼다. “나는 가장 행복한 남자요. 내가 사랑하는 그 여자와 다시 만나 일생을 기쁨 속에서 살 수 있었어요. 누가 뭐래도 나는 살았던 보람이 있어요. 저 세상에 먼저 가서 리나를 기다릴 겁니다.” 벤을 윤리 도덕으로 정죄할 자격이 그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내 마음에 새겨진 벤의 진실은 숭고한 것이었다.

<장지윤 전직 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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