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리수리 마하수리!’

2016-11-28 (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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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자신을 험담하는 사람 때문이었다. 터무니없는 소문을 퍼뜨린다며 억울해 했다. 누군지 뻔히 알지만 참자니 울화통이 터진단다. 좋은 방법이 없냐는 것이었다. 그저 민감하게 맞대응하지 말고 “지금처럼 착하게 열심히 살면 될 일”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우리주변에는 함부로 말하는 사람에 의해 터무니없는 오해를 받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나쁜 소문으로 피해를 당하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한인사회엔 악의적인 소문이 무성하기 때문이다. “누가 그랬더라, 아니면 말고‘ 식이다. 근거도 확실치 않은 이야기다. 일명 ’카더라 통신‘. 소위 소문문화가 원인인 셈이다.

남을 험담하는 사람들은 다 이유가 있다고 한다.
우선, 남을 험담하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다. 호기심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험담을 일삼는 사람은 누구나 남의 성공을 시기한다. 남의 실패에 안도감을 느낀다. 그런 비뚤어진 심성이 험담을 낳고 있는 것이다.


아는 것이 극히 일부분일수록 험담을 즐긴다고 한다. 겸손함이 없다는 말이다. 하나를 알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행세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모르는 것이 두렵기에 아는 체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없는 흠도 있는 것처럼 만들어 부풀리고 있는 셈이다.

남을 깎아 내리면 스스로 올라가는 느낌을 받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규모의 비즈니스를 하는 친구가 있으면 깎아 내린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자신이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험담 그 자체가 결국 자기 자신의 부족함만 드러내고 마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험담을 하는 사람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험담을 동조하는 사람은 조심할 사람이다. 그리고 험담을 당사자에게 전하는 사람은 힘든 사람이라 했다. 성경은 험담을 듣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 가르친다. 남을 욕하는 사람 앞에서 분위기에 편승하면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꼴이란 의미다. 잠언 26장 4절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너도 그와 같을까 하노라”라는 말씀의 참뜻이다.

탈무드에선 남을 헐뜯는 말은 살인보다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살인은 한 사람을 죽인다. 하지만 험담은 험담을 한자, 그 험담을 들은 자, 험담으로 피해를 보는 자를 죽이기 때문이다. 말로 인한 상처는 칼로 입힌 상처보다 깊다. 칼은 신체에 상처를 주지만 말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까닭이다.

불교의 삼업(三業)은 신업(身業), 구업(口業), 의업(意業)을 가리킨다. 신체, 언어,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선악의 행위다. 즉 어떤 일을 하려는 의지가 의업이고 그것이 신체적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신업이며, 언어표현으로 나타나는 것이 구업이다. 특히 구업은 4가지 업(業)이다. 그 중 하나가 입으로 남을 속이는 거짓말인 망어(妄語)다. 또 이간질로 화합을 깨뜨리는 양설(兩舌)이다, 욕이나 험한 말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악구(惡口)도 있다, 희롱하는 말인 기어(綺語)도 포함된다. 그만큼 불교에서 말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이는 요술을 부리는 주문이 아니다. 불교경전인 천수경 첫 시작인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다. 거룩한 경전을 읊기 전에 온갖 구업으로 더러워진 입을 가시어 깨끗이 맑히는 주문이다. 즉, ‘입에서 지은 업을 깨끗하게 씻어 내는 참된 말’이라 하겠다.
남의 험담을 즐기는 이들에게 고하노라!

이제는 ‘수리수리 마하수리!’의 주문을 세 번 외우고 그동안 구업으로 지은 죄(?)를 참회하도록 하자. 앞으로는 자신이 하려는 말이 진실한 것인가? 선한 것인가? 또 꼭 필요한 것인가? 등을 먼저 생각하자. 그 중 하나라도 아니면 말을 꺼내지 말아야 한다. 예로부터 ‘ 화(禍)’는 입에서 나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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