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카라바조의 빛과 그림자

2016-11-25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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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외신에 피렌체 대홍수로 손상된 르네상스 시대 바사리의 명화가 50년만에 복원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난 4일 피렌체시는 베키오궁에서 대홍수 50주년 기념식을 열어 손상된 문화재 복구에 힘쓴 자원봉사자들의 정신을 기리고 복원된 르네상스 시대 화가 조르지오 바사리 (1511~1574)의 명화 ‘최후의 만찬’을 공개했다.

1966년 피렌체 시내를 관통하는 아르노강이 홍수로 범람하면서 34명이 죽고 시내의 박물관과 왕국, 성당 등에 전시 보관된 수천 점의 문화재가 손실되거나 손상됐었다. 피렌체가 물에 잠기자 이탈리아 각 지와 전세계에서 몰려든 1만 명의 젊은 자원봉사자들은 흙탕물과 진흙이 범벅이 된 홍수 현장에서 청소와 문화재 복원 등에 헌신했다. 이른바 ‘진흙의 천사’들이다.

이 피렌체의 재난 역사를 다룬 로맨틱 일본영화로 ‘냉정과 열정 사이’(2001년 개봉)가 있다. 이탈리이 피렌체 공방에서 복원 미술을 배우고 있는 아가티 준세이는 10년 전 학창시절에 만나 사랑했으나 오해로 인해 헤어진 아오이를 잊을 수가 없다. 이때 아가티 준세이가 혼신의 힘을 기울여 복원하는 것은 페렌체 대홍수로 망가진 르네상스 시대 화가 루드비코 치골리 (Cigoli, 1559~1613) 작품이다. 이 화가는 강렬한 색채와 명암이 표현하는 사실주의적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 치골리와 같은 시기에 활동한 거장으로 바로크 회화의 개척자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가 있다. 카라바조는 자유분방한 사생활, 불안정하고 폭력적인 성격으로 누구보다도 풍운아 같은 삶을 살았다. 폭행과 살해 혐의로 오랜 도피 생활을 했고 결국 38세 나이로 객사하지만 미술사 흐름을 바꿀 정도로 천재적 화가였다.
다채롭고 화려한 르네상스 회화들과 달리 어두컴컴한 배경 속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극단적으로 명암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그의 회화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런 그의 회화 기법은 루벤스, 렘브란트, 들라클루아, 쿠르베, 모네 등등 후대의 바로크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최근 페이스북은 카라바조의 작품 누드화를 삭제했다가 게시자의 항의를 받자 사과한 일도 있었다. 예술기획자 해밀턴 모우라 필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작은 고추를 드러낸 큐피드가 웃으며 화살을 들고 있는 모습을 담은 카라바조의 1602년 작품을 게시했다. 그는 ‘사랑이 모두를 정복한다’는 뜻을 지닌 ‘아모르 빈치트 옴니아’라는 라틴어 제목이 붙은 이 그림을 글과 함께 올렸다.

이것은 곧바로 삭제됐고 그의 계정도 수시간동안 이용이 차단됐다. 페이스북 규정상 알몸 그림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는 이 그림은 예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며 소송을 할 것이라고 밝혔고 페이스북 예술 애호가들도 역사와 문화에 대한 폭력이라고 동조했다.

이래저래 요즘 카라바조란 이름이 세간에 오르내리고 있는데 이 카라바조의 작품 한 점이 현재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전시되고 있다. ‘성 마태오의 순교 (Martyrdom of Saint Matthew)’라는 이 작품은 예수의 열두제자 중 한 명인 마태오 이야기를 그린 세 점 중 하나이다.

이 그림은 카라바조의 위대한 후예인 발렌티 드 불로뉴(1591~1632)의 특별전시장에 첫 번째로 걸려있다. 블로뉴는 참신하고 혁신적인 화풍을 전 유럽에 전파한 카라바조의 영향으로 일상을 사실적으로 포착한 그림을 주로 그렸다. 스승 카라바조의 대를 잇는 불로뉴의 빛과 그림자를 잘 살린 그림들을 보면 삶의 경건함에 엄숙해지고 위대함을 느끼게 된다. 내년 1월 16일까지 전시되는 불로뉴 특별전을 보면 모든 것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느끼게 된다.

살다보니 인생이 참으로 녹록치가 않다. 그러나 다소 위로가 되는 것은 우리 인생에 어둠만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고 늘 나쁜 일만 생기란 법이 없다는 것이 사는 것이 힘들 때 작은 희망을 품게 한다. 이 어둠을 커버하는 밝음이 찾아오겠지 하는....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암담한 현실에 눈앞이 아득하고 가슴이 답답하지만 언젠가는 이 어둠이 걷힐 것이다. 요즘 같은 때, 메트뮤지엄 거장의 작품에서 ‘빛과 그림자-삶의 명암’, 다소 마음이 풀린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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