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촛불시위와 4.19

2016-11-22 (화) 추재옥/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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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60여년 전, 그 해 사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4.19 직전, 서울의대 본과 2년생들은 학업을 중단하고 나라의 부정부패를 척결하자는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만 토론을 중지하고 모두 밖으로 나가자를 외치며 나는 뒷좌석에서 앞으로 뛰쳐나왔고 많은 급우들도 뒤따라 나왔다. 의사가운을 입은 채 우리는 아무런 저지도 없이 원남동, 안국동, 경복궁 앞을 지나 타 대학들보다 먼저 청와대 입구까지 도달했다. 안국동 앞길에는 나의 어머니와 함께 동네 주민들이 모두 나와서 손을 흔들며 환영해주었다.

유례 없는 흰 가운 데모대의 출현은 방방곳곳 세계에 널리 전파되고 4.19 기폭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뒤늦게 도착한 데모대들로 효자동 길은 빼곡히 메워졌고 후퇴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갑자기 바리케이드 앞에서 경찰들이 발포하기 시작했고 내 머리 위로 총알이 휙 휙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개처럼 엉금엉금 기어서 골목길로 도망쳤다. 순식간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효자동 길은 갑자기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번 11월 촛불시위를 보면서 그 잔인했던 4.19가 뇌리를 스치며, 마지막 집합처인 경복궁 앞으로 밀려드는 인파로 인해 혹시 밀고 밀치는 압사사고가 발생하거나 경찰과의 충돌로 사상자가 생기지 않을까 무척이나 조마조마 걱정스러웠다. 유모차를 미는 어머니부대, 애를 업고 보듬고 나선 어버이들, 나라를 걱정하는 어린 학생들까지 모두가 서로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수준 높은 문화인의 미덕을 보여주었다.

시위대는 지쳐 쓰러진 환자를 수송하는 앰블런스에 기꺼이 길을 터주었고, 바리케이드를 부수는 깡패들도 보이지 않는다. 의경을 때리지 말라고 타이른다.

총 쏘고 몽둥이질하고 물대포 갈기는 과거의 폭력경찰에서 이제는 방위선만 고수하며, 시위대를 견제하고 존중하는 성숙한 경찰로 변신했다. 경찰차에 꽃을 붙여주는 학생도 보인다. 연행자 한명도 안보이는 축제를 방불케 하는 평화스러운 시위에 전세계도 놀란다. 원근 각지에서 모여들어 서러움을 함께 달래는 만남의 광장으로 서울은 탈바꿈 하고 있다.

그만큼 예전에 비해 민주주의가 무르익고 유럽 아랍권들보다는 훨씬 국가의 위상이 높아졌다. 남이 하니까 무작정 따라가는 우- 하는 군중심리도 없어지고 구호 신문 선동에 흔들림 없이 자기 중심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예전과는 너무나 달라졌다.

이제는 시민들이 무참하게 희생되는 과격시위는 역사의 뒤안길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생명의 존엄성,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존심을 함부로 짓밟는 행위는 서로 삼가자. 한국의 미래는 아직도 밝다.

<추재옥/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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