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음이 고단한 한인들

2016-11-19 (토) 강미라 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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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차기 대통령이 새로이 당선 되면서 희비가 엇갈린다. 다수의 숨어 있던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커밍아웃하며 예상을 뒤집은 선거 결과가 초래 되었다는 검증인데 과연 국민의식의 수준이 나라의 향방을 결정하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는 선거였다. 미국내 소수 인종으로 어렵사리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우리 한인들에게는 여러가지 생각과 감정이 교차 되는 순간이다.

미 대선 뿐 아니라 한국 정세에도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은 최근에 불거진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에 관한 충격으로 그 심사가 어지럽기 그지없다. 한국시간으로 11월12 일 오후에 일어난 촛불 시위에는 주최측 추산으로 100만에 육박하는 시민들이 참여하여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며 거리 행진에 나섰다.

엄청남 규모에도 평화적으로 진행된 시위를 바라 보며, 백만 이라는 숫자의 중압감이나, 광화문을 뒤덮은 무수한 촛불의 물결이 보여주는 시각적 장엄함을 너머 또 다른 감동으로 내게 다가왔던 장면이 있었는데 그것은 시위 중 시민들의 자유 발언을 통해 민초들의 의견이 가감 없이 개진되는 모습이었다. 김용옥 선생의 연설, 평생 보수당만 지지 하여서 미안하다는 어느 할머니의 발언, 교복을 입고 나온 앳된 학생의 성토 등 다양한 의견 표출을 지켜보며 1789 년 바스티유 함락 이후 촉발된 프랑스 혁명의 저변에 자리 잡았던 프랑스인들의 높은 의식수준과 활발한 토론 문화를 생각하였다.


왕정을 전복 시켰던 프랑스 대혁명은, 당시 유럽을 휩쓸던 계몽주의의 영향과 더불어 당대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나 루소 등의 앞선 사상과 함께 무엇보다도 그 앞선 지식을 보편화 시킬 수 있었던 프랑스의 토론 문화에 그 근간이 있었다.

16세기 후반 프랑스 궁정이 유럽 문화의 중심이 되면서 부유층의 귀부인들이 그들의 살롱을 문화, 예술, 사상 등 지식을 나누는 장소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들은 명사나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기도 하고 사교 혹은 토론의 장으로 삼았으며 무료로 개방하여 신분에 상관없이 출입 할 수 있도록 하였다.

Ancien Regime 구체제, 즉 막강한 절대 군주제의 신분사회였던 당시 프랑스의 상황을 고려할 때 신분의 고하와 상관없이 지식과 문화를 교류하였다 하는 것은 당대 프랑스 인들의 지성을 존중하는 경향, 앞선 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토론 문화가 평민층에도 확산되어 거리 곳곳의 카페에서 예술, 문화, 사상 전반에 걸친 토론과 지식의 교환이 이루어 졌고 이를 통해 유럽의 새로운 문화의 기류가 탄생이 되고 퍼져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상흔에서 채 일세기도 지나지 않은 오늘 이 나라를 세계 속에 우뚝 서게 했던 것은 다름아닌 교육과 지식을 존중하는 우리 민중의 힘이었음을 다시 깨닫는다. 또한 100만의 시위와 1인 시위가 다 같이 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래서 치정자에게는 복잡하고 귀챦은 대중이 될지 언정 개인의 의사와 선택이 존중되고, 획일화 된 생각이 아닌 다양하고 유기적인 의견이 살아 숨쉬는 사회가 진정한 시민사회, 민주주의의 사회라고 생각한다. 정치에 대한 부끄러움과 한국인으로서의 더 큰 자랑스러움이 공존하는 시간들이다.

<강미라 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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