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울지말라, 떨지말라

2016-11-11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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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비선실세 최순실은 일찌감치 독일로 피신 가서는 “심장이 굉장히 안좋아 병원 진료받고 있다.”면서 귀국을 미뤘다. 한국으로 남몰래 들어와 10월 31일 검찰에 출두해서는 손으로 입 막고 울먹이며 “국민 여러분 용서해주세요, 죄송합니다”고 했다.

최순실의 최측근으로 ‘문화계 황태자’로 불리는 차은택은 검찰 수사를 피해 중국으로 잠적하여 그새 재산 처분을 하였는지, 모의책을 강구했는지 두달간 나타나지 않았다. 8일 인천공항을 통해 들어온 차은택은 압송되며 눈물을 흘렸다.

왜 우는가? 그동안 누린 황태자 권력의 종말을 맞아 서러운 것인가? 대통령 임기까지 발각되지 않고 잘 먹고 잘 살다가 외국으로 도망가야 했는데 너무 일찍 터져버려서 야속한가?


“물의를 일으켜 국민에 죄송하다”던 그는 정작 검찰 조사가 들어가자 온갖 비리 의혹에 대해 모른다, 대통령 독대한 적 없다며 발뺌하고 있다. 이들이 국정 농단을 할 수 있게 비호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대국민사과에서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최순실의 도움을 받았다”며 대통령 연설문 사전노출을 시인했고 11월4일 두번째 대국민사과를 하며 필요하면 검찰 조사를 받고 특검도 수용하겠다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들은 대체로 “건강이 너무 안좋다 ”, “ 밤잠을 잘 못잔다. ” 고 한다.

원래 대통령은 밤잠을 잘 못 잤다. 청와대는 작년 박대통령의 중남미4개국 순방기간동안 ‘복통이다.’, ‘감기기운 있다’면서 대통령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브리핑 한 적도 있다. 그전에도 경제적 고민으로, 국회 쟁점법안이 통과 안 돼 등등 속이 타들어가 잠도 제대로 못잔다고 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사실 일국의 대통령 건강은 민감한 정보라서 공식 일정을 일체 취소할 상황이 아니면 언급을 안해야 한다. 대통령은 아파도 아프다고 말 할 수가 없다.

온갖 비리와 부정, 특혜로 개인 재산 축적을 하고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당사자들이 흘리는 눈물과 떨림, 용서라는 말은 국민들에게 화를 더욱 불러일으킨다.
다들 여론의 동정표를 받으려는 수법이다, 각본에 짜여진 쇼다, 진정성이 없다, 우니까 짜증나 하고 말 한다. 어떻게든지 죄를 낮추거나 없게 만들어 벌을 적게 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대다수 공무원들은 공복으로써 한단계씩 차근차근 올라가면서 근면성실하게 살아온 수십년 삶의 뿌리가 흔들렸다. 국민들은 최태민 일가가 대통령을 등에 업고 축적한 수천억원의 재산에 한두푼도 절약하며 살아온 자신의 보통의 삶을 돌아보며 내가 잘못 살았나 할 정도로 회의가 든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사소한 일에도 짜증과 무기력증이 엄습하고 있다.

요즘 한국민들은 매일 매일 비리와 전횡이 드러날 때마다 충격 받고 분노하고 실망하다보니 집단우울증, 홧병에 걸렸다고 한다.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자신이 인정한다면 ‘용서’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원래 용서는 사람의 가장 위대한 행동 중 하나이자 가장 하기 힘든 행동 중 하나이다. 울면서, 떨면서, 이건 바로 국민들에게 ‘최고의 복수는 용서다’며 국민들을 달래는 척, 용서를 이용하고, 강요하는 격이다. 이것이 속을 더 뒤집는다. 용서라는 것은 가해자가 진심으로 모든 잘못을 늬우쳤을 때 가능하다.

용서는 책임을 지는 것이다. 가해자는 자신들이 국민에게 준 상처를 책임져야 한다. 위로받아야 할 사람은 국민이다, 울고 싶은 사람도 국민이다. 정작 잠 못자는 사람도 국민이다. 앞으로는 국어사전에서 ’용서‘라는 말을 빼버려야 할 듯싶다. 국정 농단에 참여한 자들은 수십년이든 종신형이든 죄값을 받아야 한다. 이번 11월8일 대선에서 제35대 미국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트럼프를 선출한 미국민들은 ‘막말’ 과 ‘거짓’ 중 ‘막말’을 택했다.

뉴욕에서 자영업을 하는 한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타인종 고객들로부터 “너네 나라 왜그러냐?” 는 말을 듣는다. 뉴욕타임스 만평에도 최순실이 머리 위에서 조종하는 박근혜 로봇이 나왔다. 이렇게 경멸과 거짓의 대상이 된 대통령은 미국의 새대통령과 대한반도 정책과 한미관계, 북핵 대응 등에 대해 당당하게 한국측 입장을 전달할 수 있는가?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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