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누구나 꽃이 피었습니다’

2016-11-05 (토) 원혜경 한국학교 교장/ 버겐 필드
크게 작게

▶ 뉴저지 자문위원 글마당

이번 한국학교 여름캠프 때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면 모여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면서 재미있게 놀았다. 그런데 그 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면 ‘무궁화 꽃이...’ 라가 아니라 ‘누구나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라고 하는 거야’ 라고 알려주려 했는데 너무 재미있게 놀고 있어서 그냥 지켜보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놀이에는 룰이 없었고 아무나 다가와서 술래를 탁 치고 도망가면 되고 누가 잡혔던 상관없이 즐거워하는 것이었다. 놀이가 끝나고 알려주니 무안해 하지도 않고 무궁화 발음을 더 자세히 알려 줄 수 있었다.

우리 어른들의 생각은 늘 정형화 되어 있어서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 생각대로 맞추고 바꾸고 지적하고 고쳐야만 한다고 생각 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그렇게 놀지 마, 그 아이와 놀면 안 돼, 이건 이렇게 하는 것이야 하며 잔소리로 틀을 만들어 주어 아이들의 창의력과 독립심이 약해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관철되지 않으면 무조건 화를 내고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요즘은 그런 아이들도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그 바람에 소통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참 어려워지고 있다.


며칠 전 미술전시회 책자를 지인과 함께 보면서 책자에 있는 그림 중에 나뭇잎이 다 떨어진 그림을 보며 “난 이런 그림이 참 좋아요” 했더니 “저도 이런 그림을 좋아해요.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달이 참 좋아요.”그렇게 이야기 하며 우리는 일치된 서로의 마음이 반가워 손뼉을 마주쳤다. 그러면서 지인은 “그런데 제가 이런 그림이 좋다고 하면 사람들은 왜 쓸쓸한 나무그림을 좋아하냐고 의아해 하네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바라보는 빈 나무는 자신의 역할을 다 감당하고 쉼을 얻기 위해 나뭇잎을 떨어트리고 깊은 잠에 빠진 것 같아 그 나뭇가지가 편안하다. 그리고 그 빈 나뭇가지에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그리 넣으며 상상 할 수 있어서 더욱 더 좋다. 나뭇잎이 없는 나무는 비움도 있고 채움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상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이외 것은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틀에 갇혀 가는 우리의 감성이 아쉽고 안타깝다.

구르는 낙엽만 봐도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라고 읊조릴 수 있는 감성이 살아났으면 좋겠다. 요즘 우리의 감성이 소통되지 않고 커다란 담으로 막혀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가끔은 아이들이 내 삶의 스승이 되기도 하고 지도자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서 인생을 배우고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단단하게 굳어진 어른들의 마음을 아이들의 맑고 깨끗한 감성으로 눈 녹듯이 녹여주기 바라는 것도 욕심일까? 한때 순수하고 풍부한 감성을 갖고 있었지만 살면서 지치고 꺾이며 소멸되어 버린 그 감성을 가끔은 그리워하며 찾고 싶을 때가 있다. 잊혀져가고 있는 감성을 다시금 찾아서 우리의 마음에도 꽃이 피었으면 좋겠다.

외국에서 살다 보니 고국 정세에 대해서 더 민감하고 안타까울 때가 많다.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이민자의 삶이라 나의 조국이 안정되어야 우리가 힘을 얻고 의지가 되는데 불안한 고국의 소식은 우리의 기둥이 무너지듯 아프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들의 눈동자를 보면 앞서서 가는 어른으로서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가득하다. 그렇다고 지금 자포자기하고 싶지 않다. 이 시간을 지혜롭게 보내면 우리의 마음에도 꽃이 피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리고 그 꽃은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며 그 다음세대로 이어져가는 대한의 젊은이로 이곳 미국에서 자랑스럽게 자리매김하며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고국에서 겪고 있는 어려운 시기를 함께 잘 극복해서 우리 모두의 마음에 ‘누구나(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되었으면 좋겠다.

<원혜경 한국학교 교장/ 버겐 필드>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