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을이 좋아

2016-11-05 (토) 김상준 비영리단체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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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이 분명한 우리나라는 각자 매력 있는 사계절과 더불어 살 수 있어 좋다. 멋진 사계절 중에서 언제부터인가 가을이 좋아졌다. 화사한 봄을 좋아했던 때도 있었다. 시원한 바다를 생각나게 하는 여름을 제일 좋아했던 시절도 있었다. 닥터 지바고의 멋진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겨울이 좋았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가을이 제일 좋다.
여름처럼 무덥지도 않고 겨울처럼 춥지도 않기 때문이다. 가을 아침에만 느낄 수 있는 상큼함과 신선함이 있기 때문이다. 가을은 창문을 열어야 보인다. 무작정 떠나야 만난다. 완행버스를 타고 떠나면서 가을의 숨소리를 들어야 안다. 차창을 열고 들녘을 보라! 비록 내가 심어놓은 추수할 곡식은 아니더라도 황금 알이 조랑조랑 달려있는 벼와, 부러질 듯한 나무에 매달려 있는 과일을 바라보면 배가 부를 것이다.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감나무, 밤나무, 사과나무 등에서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계절이고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자연으로부터 삶의 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계절이다. 봄이 설렘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다. 풍요로운 가을 산. 그 산속에 들어가 겹겹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천천히 걸어가면 머리도 숙여지고 목에 힘도 빠지고 몸도 유연해 진다. 잊었던 삶의 진실을 보게 된다.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정리를 해야 되는가 하는 깨달음도 온다.


그래서 가을을 어느 시인이 사색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아! 짧고 소중한 이 가을을 어떻게 담아 두어야 될지 마음의 파도가 친다. 가을은 고독의 계절이다. 나그네가 아니더라도 가을이 오면 가슴이 추워지고 눈물이 난다. 아무도 찾아올 리 없건만 왠지 문밖을 얼쩡거리게 된다. 전화벨 소리도 기다려진다. 가을 달에 눈을 맞추면 그리움의 시를 쓰게 한다. 가을은 입으로 말하지 말고 마음으로 말을 해야 느낀다. 수필집. 시집. 참회록 같은 책을 읽으면서 담담히 인생을 관조해 보면 미래를 생각하고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가을은 예술품이다. 한 폭의 유화다. 유화 속에 진리가 그려져 있다. 삶의 보람이 주렁주렁 열린 인생의 가을, 우리들의 마지막도 한 폭의 유화 속에 아름답고 풍성하게 그려져야 할 텐데...

<김상준 비영리단체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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