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감사는 행복의 문

2016-10-31 (월) 최효섭 아동문학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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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부르크스 씨는 미국인의 만족도를 조사 보고하였다. 직업에 만족하는 자가 84%, 가정적 수입에 만족을 표명한 자가 76%, 앞으로 5년 동안 현재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가 62%, 그리고 전반적으로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이 65%로서 세계 수위라고 한다.

개인은 이처럼 만족한데 나라의 현황에 대해서는 25%만이 만족하다고 하였으며, 이것은 세계적으로는 꼬리로부터 네 번째로 미국보다 더 처지는 나라는 이스라엘, 멕시코 브라질뿐이다. 미국인 60%는 아들 딸 대에 가서는 행복도가 현재보다 악화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개인의 만족도는 다분히 경제생활에 기인하고 있다. 확실히 미국인의 주택이 커지고 자동차를 더 여러 대 소유하고 풍요를 느끼며 산다. 그러나 많이 가지는 것이 곧 행복은 아니다. 헬렌 켈러가 “내가 사흘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면, 첫날은 친절했던 사람들과 갓 난 아기의 얼굴들을, 둘째 날은 박물관 미술관에 가서 인류가 이룩한 발전의 발자취와 놀라운 창조를 음미하고, 마지막 날은 떠오르는 태양과 숲의 새소리, 바다의 웅장함과 파도소리를 듣겠다.”고 하였는데 이것들은 우리가 돈을 안 드려도 즉시 얻을 수 있는 것들이고 사실 날마다 보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불행 감을 가진다면 그것은 나에게 무엇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의 심성이 타락했기 때문이다.


나는 살면 살수록 세상이 아름답게만 보인다. 해돋이의 기적, 아기의 탄생, 계절 따라 바뀌는 색깔의 조화, 아이들의 웃음소리, 과학자들의 놀라운 발명, 예술가들의 위대한 창작, 착한 사람들의 숨은 봉사, 자유를 향한 우람찬 함성, 불치병과 싸우는 의학자들. 흐뭇하고 감사한 일을 찾아보면 하늘의 별처럼 우주에 꽉 찼다. 정말 아름답고 살만한 세상이다.

행복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살면 행복해진다. 교만과 아집과 욕심의 좁은 상자에서 뛰쳐나오는 것이 급선무이다. 화의 분화구에서, 질투의 용광로에서, 경쟁의 수렁에서 헤어 나와 아이 같이 맑고 단순한 마음을 가지고 가족에게 이웃에게 조물주에게 감사하는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면 행복이 찾아온다.

불평도 만족도 습관이 된다. 불평의 눈으로 보면 사방에 불평거리가 널려있다. 그러나 감사의 눈으로 보면 고마운 일과 고마운 사람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다. 나는 이런 시를 적어보았다. “오천 번의 그 맑은 새벽/ 오천 개이 이슬에 반짝이는 꽃송이들/ 황금빛으로 물든 오천 번의 황혼/ 달빛에 춤추는 허드슨 강/ 답답함을 식혀준 맨하탄의 강바람/ 고향을 전해주는 억만의 별들/ 세월 속에 불을 붙이는 파크웨이의 단풍/ 사랑과 우정과 따뜻한 눈동자들/ 역사를 맑게 하려는 그 눈물과 피들/ 끝에서 끝까지 아름다움이 줄을 지었다.”

올려보는 불만보다 내려 보는 자비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욕망의 우물을 파며 인생을 마치지 말고 사랑하며 또 사랑하며 매듭을 지어야 하지 않을까. 주머니를 채우려고 애쓰기보다 감사가 가득한 주머니를 준비하는 것이 바른 길이 아닐까. 사람이 감사를 모를 때 그는 독사의 이빨을 가지게 된다. 남도 다치고 스스로도 무너뜨린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것이 주어진다. 그러나 지금의 상태를 감사 할 줄 모르는 사람은 가진 것 마저도 잃게 된다. 감사하는 마음은, 하늘 문을 열리게 하고 기회와 미래의 문도 열리게 하지만 감사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열린 문도 닫히게 한다.

감사 한다는 것은 단순히 ‘반사적 응답(reaction)’이나 ‘반응(response)’이 아니다. 누가 나에게 이렇게 해 주었거나,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주셨기 때문에 거기에 반응하는 용어가 아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축복을 창조하는 원동력이 된다.

<최효섭 아동문학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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