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돈과 라스푸틴

2016-10-28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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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돈(辛旽, 1322~1371))은 고려말 승려로 당시 백성들 사이에 생불이라는 소문이 있어 공민왕은 그를 개경으로 불러 들였다. 그때부터 신돈의 달변에 매료된 왕은 신돈을 궁궐에 출입하게 했다. 신돈은 말을 탄 채 홍문을 출입하고 왕과 나란히 앉는 등 무례하기 짝이 없다가 나중에는 정문 출입이 불편하다고 궁성 뒤에 조그마한 문을 내고 그곳으로 출입했다. 뒤쪽 공터에 집을 지어 그곳에 살며 수시로 왕을 오게 했다.

왕이 오면 부처 앞에 꿇어앉아 분향하고 불경을 외니 왕이 더욱 존경심을 갖게 됐다. 급기야 왕은 이곳에서 반야를 만나 무니노(후에 우왕)를 낳았다. 점차 신돈이 모든 국정을 맡아 자신의 반대세력은 모두 없애고 세력이 비대해졌다. 이에 왕도 꺼려하자 역모를 꾀하다가 처형되었다.

그리고리 라스푸틴(1869~1916)은 최면술을 믿었던 러시아 정교회 이단종파의 수도승으로 러시아 황태자의 혈우병을 기도로 낫게 하면서 니콜라이 2세와 황후의 신임을 얻었다. 황후는 하나님이 라스푸틴을 통하여 자신에게 직접 말한다고 믿었다. 라스푸틴은 각료 인사를 비롯한 내정 전반을 좌지우지했고 니콜라이 2세는 라스푸틴의 말대로 1차세계대전 전장에 나갔고 심지어 라스푸틴의 예언에 의존해 황후는 작전 지시를 내렸다.


라스푸틴은 결국 귀족 장교들에 의해 암살당했고 그 다음해인 1917년 니콜라이 2세와 황후, 1남4녀의 자녀도 볼세비키 혁명으로 모두 총살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한국민은 요즘, 대통령 연설문 수정, 대북관계, 국가안보 기밀, 청와대 정부 인사 개입 정황 등이 속속 드러나면서 최순실 국정농단에 분노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신돈이 공민왕때의 고려를 망하게 한 사건, 괴승 라스푸틴과 함께 몰락한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를 떠올린다는 말이 노골적으로 나온다. 더불어 최태민의 영생교가 무엇이길래 그 일가가 수십년에 걸쳐 한국민을 우롱했냐고들 한다. 최태민은 1970년대 불교, 기독교, 천도교에 샤머니즘을 종합하여 영생교를 세웠고 ‘사람은 원래 신이었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사람이 원래의 신체로 돌아가 신이 되면 ‘살아영생’한다는 것이다.

최순실에 대한 각종 의혹 보도가 매일, 매일 놀랍지만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본다. 박대통령의 의상을 제작하고 만드는 강남 신사동 샘플실에서의 최순실 동영상이다. 2014년 11월14일 신사동 샘플실에서 옷을 체크하고 며칠 후 청와대 행정관이 옷을 포장해 가고 한시간 뒤 정상회담을 하러 중국에 간 박대통령은 이 옷을 입고 나타났다. 5일후 최씨가 이곳에 와 재단사에게 돈을 주는데 마치 동대문 시장 상인에게 흥정 후 옷을 사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주듯 한다.

한 정치가는 “대통령 사주와 색깔의 궁합을 맞춰서 최씨가 대통령 신변 안전을 위해 색깔을 지정했던 것 “이라 주장한다. 그렇다면 지금 최순실이 옆에 없는 박대통령은 오늘은 어떤 칼라의 옷을 입어야 할 지? 내일은 또 어떤 색을 택해야 액을 피할 지, 모든 것이 막막하고 두려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 방송을 할 즈음, 미국 공영방송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 초대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해밀턴(Hamilton)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요즘 가장 핫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인 해밀턴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초대 재무장관 중 한명인 알렉산더 해밀턴(1755~1804)의 삶을 중심으로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등의 등장인물과 그들의 활약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백악관에 한 고등학교의 학생들을 초청하여 해밀턴 출연배우들이 간이 브로드웨이 쇼를 보여주는데 랩과 힙합 음악이 나오자 오바마는 같이 몸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카메라는 히끗히끗하면서 까무잡잡한 짧은 머리 뒷통수가 음악에 맞춰 이리 저리 흔들거리는 모습을 자꾸 보여주는데 저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지금 박대통령은 얼마나 불안 초조할 까? 그런 대통령을 둔 국민도 불안하다. 불쌍한 대통령을 둔 불쌍한 국민이 되고 싶은 국민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는 ‘영웅 이순신’이나 ‘안중근 의사’ 같은 공연을 보고 관객과 함께 어깨동무 하며 으쌰 으쌰 하고 장쾌한 음악에 맞춰 같이 몸도 흔드는 대통령을 가지고 싶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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