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지막 선택

2016-10-26 (수) 여주영/ 주필
크게 작게
인간은 왜 사는가? 철학자들은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서 산다고 한다. 반면 종교에서는 영생을 준비하기 위해 산다고 한다. ‘안락사’는 이 과정 중에 오래전부터 많은 논쟁거리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슈이다. 안락사란 암 말기 불치나 난치병에 걸려 극심한 통증을 수반하는 환자들이 의료진의 도움을 얻어 죽음을 택하는 일종의 ‘조력자살’을 말한다.

누구든 죽음을 앞두고 참아내기 힘든 고통 앞에서는 속히 죽음으로 마감하면서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추세이다.

최근 칠레에서 불치병에 걸려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던 한 소녀(14세)가 견디다 못해 대통령에게 안락사를 허용해 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대통령은 그 호소에 법적인 이유를 들어 한마디로 허용을 거부했다. 이 소녀는 기관지 점액의 과다 손상으로 폐 기능에 큰 지장을 받는 난포성 섬유증을 앓고 있는 환자이다.


칠레정부는 그 소녀에게 애잔한 감정은 갖지만 법에 의해 소녀의 청을 들어줄 수 없다면서 단지 대통령이 병원을 찾아가 그 소녀를 위로해주는 것으로 그쳤다고 한다. 이 소녀는 아무리 고통이 심해도 그 고통을 견뎌내야지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죽을 수 없는 형편이다.

또 얼마 전 영국에서는 평생 간호사로 일하던 한 70대 여성이 남편과 딸의 동의를 얻어 스위스로 가서 안락사를 택한 사실이 있었다. 그녀는 병원에서 수많은 환자를 돌봐온 생활에서 많은 노인들의 아픔과 고통을 보았는데, 그들의 상황이 이제 자신에게로 다가왔다며 그들과 같은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아 법이 허용되는 스위스로 가서 안락사를 택했다는 것이다.

심한 통증을 참지 못해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건 현대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고대에서도 극심한 통증을 수반하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면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일이 없지 않았다.

그리스의 헤라클레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12가지의 온갖 고역을 다 완수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럼에도 휘드라의 독이 살 속으로 파고들자 숱한 참을성으로도 도저히 참아낼 수 없고, 어떤 무기로도 찔러 무찌를 수 없는 그 무엇에 견디지 못해 결국 오이태산에 장작을 쌓아놓고 스스로 불에 타 죽었다고 한다. 대체 고통이 얼마나 심했으면 그렇게라도 해서 죽음을 택했을까. 천하의 영웅도 죽음의 고통 앞에서는 단 하나의 길,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세계적인 논란 가운데 처음 안락사를 합법화한 나라는 2001년 네덜란드이다. 그후 미국에서도 오레곤, 워싱턴, 버몬트, 몬테나, 멕시코, 캘리포니아 등에 이어 이번에는 뉴저지주 하원에서 21일 전체회의를 통해 찬성 41표, 반대 28표로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뒤를 이어 앞으로 뉴욕이나 다른 주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이 법은 더욱 확산될 조짐이다.

이미 어떤 나라는 18세 미만 청소년까지, 또 어떤 나라는 모든 연령대까지 안락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가톨릭국가인 프랑스와 스페인의 경우 찬성률 상위 4개국에 들어 파격적인 변화라는 분석이 따르고 있다.

안락사를 통한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안식으로 인식하고 있는 나라들이 속출하면서 많은 나라들의 죽음에 대한 인식이 이전과는 다르게 새롭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생명의 존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안락사는 여전히 극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그에 대한 찬반논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인간은 생로병사에 속해 있으며 모든 사람은 죽음의 계곡으로 치닫고 있다. 계급이나 재산여부에 관계없이 모두 가는 방향은 한 곳이다. 하지만 고통중인 병석에서 마지막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는 가는 각자의 몫이자, 누구나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권리이다. 참기 어려운 고통속에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결정해야 할까, 우리 모두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 주필>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