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추악한 미국대통령 선거전

2016-10-13 (목) 권태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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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선거는 재미있는 스포츠게임”이라고 말했다. 특히 대통령선거는 스포츠 중의 스포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미국대통령 선거전은 보고 싶은 게임이 아니다. 더욱이 오명을 남긴 수치스러운 게임이다.

2차 토론에는 연단에 등장하면서 서로 인사도 없었다. 끝난 후에도 마지못해 악수만 하고 지나쳤다. 유례없는 일이다. 미국대통령 선거전은 신사적이며 모범적이라는 이야기는 옛 말이 되어버렸다.

두 후보 어느 누구도 미국 국민들은 물론 세계에 기대와 희망을 주는 후보가 아니다. 공화당 트럼프 후보는 뉴욕타임스가 ‘거짓말쟁이’라고 못을 박을 만큼 자기자랑만 하며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막말을 서슴지 않는 후보자다. 민주당 클린턴 후보는 국무장관 시절 공적 이메일을 사적으로 이용하여 논란이 되어왔다. 클린턴은 정직하지 못한 사람으로 많은 유권자들에게 인식되어 있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여성후보가 사상 처음 나오는 역사적인 선거다. 9월27일 1차 후보자토론회를 보기 위해 ‘빛과 사랑’ 편집을 끝내고 편집진과 저녁을 먹고 일찍 헤어졌다. 텔레비전 앞에 식탁의자를 놓고 90분 토론을 지켜보았다.

정책대결이 아닌 인신공격에만 집중했던 치열한 공방전이었다. 이 토론은 트럼프의 막말이미지를 바꿔놓지 못하고 자신의 과오가 더 폭로되는 토론의 결과가 되었다. 트럼프후보는 흥분하고 고함치며 상대방 후보의 말에 51번이나 끼어들었다. 클린턴은 차분하게 대응했지만 인신공격으로 트럼프를 강하게 몰아세웠다. 토론 후 즉시 발표한 CNN방송국의 집계는 62대 27이란 클린턴의 승리였다.

나는 10월 9일에 실시한 제 2차 토론에 기대가 적지 않았다. 1차 토론에서 완패한 트럼프가 어떻게 만회할 것인가에 관심이 컸다. 1차토론 이전에 트럼프의 성적비행에 대한 내용이 워싱턴포스트에 의해 폭로되어 궁지에 몰리고 있었다. 2차 토론이 시작되기 며칠 전에 또 다른 성적 비행을 담은 치명적인 내용이 CNN에서 방영되었다. 2차에도 텔레비전 앞에 식탁의자를 놓고 앉아 90분을 보냈다.

그런데 이 토론에서도 두 후보는 1차 때 보다 훨씬 강도 높은 인신공격에만 매달렸다. 트럼프는 실추된 인기를 만회하기는커녕 더 점수를 잃었다. 대통령이 되면 클린턴을 형무소에 넣겠다는 독재자 같은 위협적인 말을 서슴지 않았다.

난잡한 성행위를 한 것을 자랑스럽게 방송에 털어 놓았던 것을 사과는커녕 “일개 rocker room에서 하는 농담”이라고 변명만 했다. 클린턴도 정책보다는 인신공격에 더 집중했다. CNN 반송사의 집계는 57대 34로 또 트럼프의 패배였다.

2차 토론이 있었던 날 아침예배를 마치고 아내와 큰 아들집의 식구들과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옆에 앉은 손자가 내게 말을 건넸다. “할아버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한국으로 이사 가세요?” 나는 얼떨결에 “이사를 가면 너를 보지 못하잖아?”하고 대답했다.

1차토론 때 사회자가 클린턴에게 “트럼프가 당선되면 당신은 다른 나라로 이민 갈 것인가?”질문했던 것이 생각난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수치스러워 다른 나라로 이민 가겠다는 조크들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손자가 나에게 조크로 한 이야기였지만 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이제 겨우 7살이다. 아들이 학교에서 듣고 온다고 아이 아버지는 나에게 말했다. 어린 아이들까지도 학교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할 대통령 후보자들이다. 그런데 어린 아이들의 조롱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에 미국의 앞날에 걱정이 앞선다. 얼마 전 골프장에서 만난 백인 중년남자에게 대통령선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보았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이번 선거에 기대할만한 후보자가 없다!”

<권태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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