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을 위한 장작

2016-10-12 (수)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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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40년경 그리스에 포류크라테스라는 인물이 있었다. 가난했던 그는 가구공장을 열고 노예들을 고용해 장사를 시작했다. 노예들이 만든 물건은 부자들이 연회때 사용하는 의자 같은 값비싼 가구였다. 이후 그의 수중에는 부자들의 손에서 나온 금, 은 화폐로 가득했다.

그는 사업을 점점 확장, 이번에는 배를 건조하고 그 건조한 배로 이 섬 저 섬을 돌아다니며 남자는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은 유괴하면서 황금과 직물을 마구 실어 날랐다. 이렇게 해서 돈을 잔뜩 긁어모은 후 그는 나라의 정치에도 본격 참여하였다.

포류크라테스가 이처럼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모르면서 마구 돈만 거둬들이고 있을 때 ‘침묵’을 모토로 한 현인 피타고라스가 나타났다. 그가 출현하자 젊은이들과 귀족들은 모두 그에게로 몰려갔다.


역사가들은 말한다. “상인은 상인의 길을 가야 하고, 시인은 시인의 길을 가야 하며, 정치가는 정치인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크게 진통을 겪고 있는 미국의 현실을 보면서 잠시 떠올려본 생각이다.

미국은 지금 공화당의 도날드 트럼프와 민주당의 클린턴 힐러리 두 후보가 난타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는 세금미납 의혹, 클린턴은 거짓말쟁이라는 오명을 안고 엎치락뒤치락 하는 가운데 어느 후보가 과연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의 길을 걸어야 마땅한가에 온통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주말 벌인 양 후보간의 2차토론은 90분 내내 서로의 약점을 치열하게 물고 뜯는 무차별적 공방으로 최악의 진흙탕싸움으로 이어졌다. 특히 트럼프는 유부녀와 미혼여성에 대한 성추문, 성폭행 등에 관한 음담패설 발언이 공개되면서 ‘자격미달’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돼 공화당 내부에서 조차 트럼프는 안 된다, 내려와야 된다며 이번 대선을 포기한다는 분위기로 돌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내 생애에 100% 포기는 없다”며 여전히 강경 일변도의 태세를 굳히고 있다. 반면 힐러리는 남편인 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 벵가지 및 이메일 스캔들에 대한 공격을 받았지만 결과는 트럼프를 압도했다는 평가다. CNN의 이번 여론조사 결과 힐러리는 1차토론 때처럼 압승은 못했지만 57%로 34%를 기록한 트럼프를 눌렀다.
2,400년전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토스는 많은 이론을 정립, 뭇 세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당시 경제상황은 어제의 가난한 자가 오늘의 부자가 되고, 어제의 부자가 오늘의 가난한자가 될 만큼 복잡하고 어수선했다. 또 사회, 정치상황도 어지러워 평민이 명예를 얻고 왕손이 부랑자가 되어 거리를 배회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시민들은 ‘대관절 어떻게 된 일인가’ 탄식하며 ‘언제나 이런 상황이 멈출 것인가’ ‘지난 날의 좋은 날들은 언제 다시 돌아올까’ 모두들 좋았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현인들을 찾아가 자문을 구했다.

그때 헤라클레토스가 답하기를 “우리들의 스승은 자신의 눈과 귀다” 라고 했다. 즉 지금과 같이 어려운 때,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사실을 정확하게 보고 들을 수 있는 분별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유권자들이 미국의 현실에 적합한 대통령을 뽑으려면 귀담아 두어야 할 말이다.

헤라클레토스가 남긴 말 중에는 또 “장작이 탈 때는 나무는 죽지만 불은 살아남는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는 전적으로 자기희생을 강조한 말이다. 그 시절 현인은 누군가가 자신을 희생해야 어지러운 사회와 정세가 바로 잡힌다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어수선한 미국도 어느 후보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장작이 될 것인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미 이번 2차 토론결과 어느 모로도 자신을 희생할 장작이 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힐러리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장작이 되어 내 한 몸 바칠 각오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미국이 지난날처럼 더욱 강건해지고 보다 풍요로워지는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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